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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5.28 18:27 수정 : 2015.05.28 18:27

“종래의 기업 경영에서는 이윤 추구가 절대선이었으며, 인권·노동·환경 등의 사회적 가치는 정부·시민사회의 몫이라고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무역과 투자의 세계화가 확산되면서 기업의 성장, 나아가 세계경제의 성장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사회적 가치들이 기업 경영에 내재화되지 않으면 안 되게 됐습니다. … 기업이 다른 사회적 주체들과 협력하여 사회적 가치를 추구함으로써 책임 있는 기업시민으로 행동할 때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 역시 가능합니다. … 기업은 인권보호의 주체라는 막중한 책임의식을 자각하고 기업 내외부의 고객들을 관리해야 합니다. … 이제는 더 이상 기업이 정부와 시민사회의 피감시자가 아닌 소비자와 근로자 인권보호의 주체가 돼야 합니다.”

기업이 이윤만 추구해서는 안 되며 인권보호의 주체로 자리매김해야 할 때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기업의 목적과 행동방식이 크게 달라져야 한다는 얘기여서 재계 등에는 불편하게 들릴 것 같다. 그런데 뜻밖에 이 발언의 당사자가 시민단체 대표가 아니라 정부의 경제 운용 사령탑인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어서 놀랍다. 최 부총리는 19일 유엔 글로벌콤팩트가 연 한국 지도자 정상회의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기업의 책임과 역할’이란 제목 아래 이런 내용의 축사를 했다. 당시 회의장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그런 만큼 최 부총리가 상당한 의지를 담아 한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노동의 질과 안정성이 담보되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기업의 노력이 중요합니다. 양질의 일자리 제공은 최고의 복지로서 소득 증대는 물론, 근로자의 자아실현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근로자 개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동시에 사회 통합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청렴한 사회를 위한 반부패 기업 문화 확산이 중요합니다. 부패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는 것은 물론, 종국에는 기업의 평판과 경쟁력도 저하시킵니다.”

귀담아들을 만한 얘기 아닌가. 하나하나가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만 되면 우리 기업은 일부 부정적인 모습을 떨쳐내고 선진적인 조직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노동쟁의 등 사회적 갈등이 많이 줄어들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경제민주화를 지향해 간다고 할 경우 상당히 의미있는 발언이다. 기업의 바람직한 변화를 촉구할 때 중요한 논거가 될 수도 있다. 보수정권의 경제 사령탑이 한 말이니 ‘색깔공세’를 받을 위험도 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최 부총리 발언을 보면서 허탈한 것은 왜일까. 그의 발언이 그가 펴온 정책기조와 꽤 거리가 있어서다. 기업이 인권보호 주체로서 행동하도록 정책적으로 얼마나 노력했는지 잘 모르겠다. 특히 산업재해 등과 관련해서 말이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반부패 문화 확산 대목도 그렇다. 그가 정규직 과보호론을 펴고 재벌 총수의 사면을 주장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경 논설위원
최 부총리가 실천보다 말을 앞세운 사례는 더 있다. 그는 3월 “적정 수준의 임금 인상이 일어나지 않고는 내수가 살아날 수 없다”며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고, 일본의 아베 총리는 아예 노골적으로 기업들에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업의 임금 인상을 유도하기 위한 대책은 거의 없었다. 이런 일이 이어지면 최 부총리의 말은 신뢰를 얻기 어렵다. 멋진 방향을 제시하는 것과 함께 이를 담보할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올해 성장률이 3% 밑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마저 한편에서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이경 논설위원 jae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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