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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6.04 18:33 수정 : 2015.06.04 18:33

지내 놓고 보면 ‘대체 뭣 때문에 그랬나’ 하고 허망해지는 일이 있다. 국회법 위헌 논란이 그렇다. 여야의 현안 합의 직후인 5월29일 청와대의 ‘권력분립 원칙 위배’ 주장으로 불붙은 위헌 논란은 ‘메르스 공포’ 와중에 며칠 안 돼 뒷전으로 밀쳐진 듯하다. 그 며칠을 되돌아보면 새삼 의아하다.

대체 이번 일이 그렇게나 난리법석을 피울 문제였을까?

논란이 된 것은 모법의 내용이나 취지에 어긋나는 대통령령 등에 대해 국회 상임위가 ‘시정의견을 통보’했던 것을 ‘수정·변경을 요구’하도록 국회법을 개정한 대목이다. 청와대와 몇몇 신문, 일부 학자는 ‘요구’를 ‘지시’나 ‘강제’로 읽고 “행정입법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표현만 조금 강해졌을 뿐 개정된 법에도 ‘요구에 따라야 한다’는 말은 없다. 그렇게 못박은 법이 수두룩한데도 굳이 안 썼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인 1998년 발의한 국회법 개정안도 같은 사안에 대해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이에 따라야 한다’고 명시한 터다. 검사 출신인 장윤석 새누리당 의원은 “그렇게 규정하지 않았음에도 강제성이 있니 없니 하는 것은 실로 공허한 논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강제할 수단도 없다. 시행령 수정을 요구한들 바로 무효가 되거나 바뀌는 게 아니라 정부 쪽으로 공이 넘어갈 뿐이다. 요구를 하기까지도 여야 협의와 표결 등 첩첩산중이다. 애초 위헌 논란의 출발점부터 존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시행령을 국회가 좌지우지하는 게 과연 잘못일까?

‘수정·변경 요구’는 결코 과한 것이 아니다. 입법권은 국회에 있고(헌법 제40조), 행정입법은 국회가 만든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위임한 사항에 관해 만들 수 있다(헌법 제75조). 그래서 법률 종속적 법규명령이다. 시행령이 법을 벗어나지 않도록 견제하는 것은 입법부의 권리고 의무다. 미국에선 행정입법안을 의회에 제출해 승인을 받아야 시행할 수 있고, 독일 연방의회는 포괄적 입법권한에 따라 행정입법을 동의·수정·폐지할 수 있기까지 하다. 행정부 마음대로 하는 행정입법이란 없다고 봐야 한다. 법원의 명령·규칙 심사권도 사후적으로 개별 소송에서 위헌·위법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에 발동하는 것이니 입법부의 견제와 충돌할 일이 별반 없다. 국회가 위법한 시행령을 방치하는 것이 되레 잘못이다.

청와대가 ‘삼권분립 원칙’과 ‘행정부 기능마비’를 거론하자 그 주변에선 ‘의회 독재’를 운운했다. 기능마비 따위가 엄살이고 호들갑이라면, 의회독재는 더더욱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다. 한국 현대사에선 대통령과 행정부의 독재와 일방통행이 더 문제였다. 여당과 야당이 힘을 합쳐 독재를 한다는 것부터가 판타지다. 공공연히 이를 주장한다면 무지몽매를 겨냥한 선동을 의심해야 한다. 결국, 지금의 위헌 논란은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통령이 언성을 높이고 주변에서 어릿광대처럼 손뼉을 친 꼴이 된다.

논란이 벌어진 이유도 물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회의에서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문제’를 연계시켜서 위헌 논란을 가져오는 국회법까지 개정했다”고 국회를 비난했다. 과민하게 언성을 높인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국회가 세월호 시행령의 수정을 요구하는 상황이 싫었을 것이다. 추측건대 대통령의 그런 반응 이후에 온갖 말도 안 되는 논리가 따라붙었을 것이다. 합의를 해준 새누리당 지도부에 대한 미움이 분출하면서 ‘여당 내 권력투쟁’ 논란으로도 번졌을 터이다. 기획하진 않았겠지만, 이제는 국회법보다 권력충돌이 두드러진다.

여현호 논설위원
청와대는 메르스 대책 긴급 당·정·청 회의까지 거부했다. 어른스럽지도 온당하지도 않은 짜증이다. 그런 짜증이 국정을 흔들고 있다. 최고 권력의 심기와 심리까지 살펴야 정치현상이 온전히 설명되는 이 비정상적인 상황은 더 짜증스럽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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