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6.18 18:40
수정 : 2015.06.18 18:40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발언할 때마다 빼놓지 않는 소재가 있다. 구조개혁을 강조하는 게 그것이다. 이 총재에겐 경기회복과 물가안정에 못지않게 구조개혁이 큰 관심사인 듯하다. 이 총재가 12일 한은 창립 65주년 기념사에서 한 말이다.
“먼저 국내 상황을 보면,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요인들로 인해 성장동력이 더욱 약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부문간 불균형, 노동시장 경직성, 과도한 규제 등이 성장과 고용, 생산과 분배의 선순환을 제약하고 있습니다. … 구조개혁은 기본적으로 정부가 주도해야 하겠지만 한국은행으로서도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통화정책기조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거시경제의 안정은 물론 구조개혁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하겠습니다. … 구조개혁에 대한 조사연구를 강화하고 현실 적합성이 높은 정책대안을 제시할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최근 공공부문 개혁 과정에서 나타났듯이 구조개혁은 정책방향이 제대로 수립되더라도 사회적 합의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천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은행의 조사연구 결과는 경제주체들이 구조개혁을 이해하고 동참토록 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총재는 하루 전 한은이 기준금리를 1.50%로 전격 인하한 뒤 연 기자간담회에서도 구조개혁을 역설했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구조개혁이 중요하다, 거시 통화·재정정책도 물론 필요하지만 서스테이너블한 성장을 위해서는 구조개혁이 중요하(다)고 …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구조개혁에 대한 이 총재의 진심이 전해져 온다. 한은의 구실을 생각할 때 이런 자세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한은 총재가 경제 현안과 관련해 조언이나 권고를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기도 하다. 구조개혁의 의미를 떠올리면 더 그렇다. 우리나라가 선진화하려면 시대에 뒤진 낡은 틀을 깨고 새로운 틀을 짜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이 총재 발언에는 그냥 넘기기 어려운 대목이 있다. 그는 “구조개혁은 정책방향이 제대로 수립되더라도 사회적 합의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천하기가 어렵”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런 그가 “사회적 합의”에 도움이 되지 않을 얘기를 하고 있다. “노동시장 경직성” “과도한 규제”를 들먹인 게 여기에 해당한다. 이는 정부와 재계의 프레임으로 대개 노동계와 시민사회에서는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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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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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총재는 대놓고 정부 편을 들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12월23일 경제동향 간담회에서 “정부(가 전날 발표한 2015년) 경제정책방향의 요지는 경제 체질을 강화하고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는 것”이라며 “방향이 잘 짜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각론에서도 노동시장 개혁, 금융부문 경쟁력 제고 등 각 분야에서 필요한 조처들을 망라했다”고 말했다.(<연합뉴스>) 구조개혁을 적시하지 않았을 뿐 그것과 연결된 정부 정책방향을 지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잘 알다시피 정부의 이런 방향에 대해서는 특히 노동계가 반대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의 발언은 그가 창립 기념사에서 “이번 창립 기념일을 맞아 한국은행은 공익, 중립, 책임, 소통, 전문성을 조직의 핵심가치로 선정하였습니다. 이들 가치는 모든 임직원들이 함께 참여하여 만든 것인 만큼 형식적인 구호에 머물지 않고 조직운영과 업무수행 과정에 잘 스며들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공표한 것과도 거리가 있다. 적어도 “중립”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 총재는 구조개혁 전파에 힘을 쏟으면서도 재벌개혁을 비롯한 경제민주화에는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경제민주화가 얼마나 긴요한 구조개혁 과제인지 모르지 않을 텐데…. 이 총재가 편파적이라고 하면 지나칠까?
이경 논설위원
jae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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