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 가운데 거부권을 가장 많이 행사한 이는 이승만 대통령이다. 25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까지 모두 65차례 거부권 가운데 이 대통령이 행사한 것만 45건이다. 이 대통령의 잦은 거부권은 그의 독특한 리더십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 이 대통령은 구미에 맞지 않는 법률에 대해선 아무 말도 없이 묵살하며 공포를 미루곤 했다. 1952년 국회의원들의 정치활동까지 마구 규제하는 정부 행태에 반발해 국회가 ‘정치운동에 관한 임시조치법’을 통과시켰을 때, 이 대통령은 “국가사회를 소란케 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한달간의 논란 끝에 국회가 이를 재의결한 뒤에도 이 대통령은 법안 공포를 거부했다. 법과 절차도 아랑곳 않는 그를 두고 학자들은 ‘옹고집형 지도자’(한승조) 또는 ‘가부장적 권위주의형 지도자’(김호진)라고 평가했다. 요즘 말로 ‘불통의 리더십’이다. 이 대통령이 국회와 국회의원을 국민의 대변자로 여기지 않은 것도 가부장적·권위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비롯됐다. 국가 안정을 위해선 제 이익을 챙기는 데만 급급한 국회의 정치행위를 규제해야 한다는 발상도, 헌법기관인 대통령으로서 헌법과 법률을 지켜야 한다는 인식보다 국민을 보살핀다는 가부장적 ‘국부’ 의식이 앞선 것도 그 때문이겠다. 그가 제헌헌법 제정 당시 “(의원내각제로 가면) 정부에 불참해 반정부운동을 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등 시시때때로 ‘국민동원’ 정치를 내세운 것도 그런 맥락에서일 것이다.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선 60년 전 그 모습을 다시 보는 듯한 기시감이 있다. 그는 침묵하고 묵살한다. 야당은 물론 여당 안에서조차 위헌이 아니라는 이들이 많고, 설령 위헌 소지가 있다고 판단하더라도 괜한 분란을 일으킬 거부권만은 자제하라고 국회의장 등 정치권과 대다수 언론이 만류하는데도 끝내 대통령은 듣지 않았다. 거부권 결정에서 정작 법은 큰 고려요소가 아니었던 듯하다. 박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의 이유를 밝히면서 위헌 등 법률 문제보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훨씬 더 많이 말했다. 정부가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펴고자 애써 마련한 법안을 국회가 통과시키지도 않는 등 훼방을 놓으면서 그도 모자라 국민을 위해 일하려는 정부의 행정을 국회법으로 일일이 간섭하려 한다고 대통령은 비난했다. 긴 발언의 취지가 그런 내용이다. 그는 또 자신이 지원해 당선된 사람들이 국민의 신뢰를 어긴 “배신의 정치”를 하고 있다며, “국민을 중심에 두는 새로운 정치를 하는 정치인들만이 존재할 수 있도록” 자신의 뜻을 거스른 이들을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해주셔야 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여과 없는 분노 표출이고, 거스름을 용납 않는 고집이다. 그렇게 여야 합의의 의회주의와 정치의 공간을 통째로 매도하고 부인한 대통령은 대신 국민 심판과 동원을 주장했다. 국부는 아니라도 그에 버금가는 위치로 자신을 생각했을 때나 나옴 직한 발상이고 발언이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뒤 헌법의 황폐화는 그 이전보다 더 선명해졌다. 헌법-법률-명령으로 이어지는 법체계는 행정입법에 손대지 말라는 막무가내의 주장 앞에 휘청거리게 됐고, 국회의 자율규범인 국회법까지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거부하면서 헌법상의 행정조직 국회법률주의 원칙은 국회조직 대통령결정주의로 뒤집혔다. 위임을 한 국회가 맡긴 대로 일을 하지 않는 행정부에 아무런 말도 못하는 게 과연 헌법이 예정했던 온당한 일인가. 대통령은 ‘국회가 행정부를 간섭하려 한다’고 소리쳤지만, 정작 그 결말은 ‘행정부가 국회를 통제하고 억누르는 대형 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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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현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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