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전에서 ‘넌 안 돼’라는 말을 들으면 모욕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대놓고 그런 말을 한다면 대단한 ‘슈퍼갑’이거나 무신경한 사람일 수 있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4일 곧 퇴임하는 민일영 대법관 후임으로 현직 법원장급 판사 3명을 추천하면서 “외부 인사인 심사 대상자 가운데는 대법관으로서의 자질 및 능력과 함께 청렴성·도덕성 등 모든 자격요건을 갖춰 적격인 분을 찾기 어렵다고 판단해 부득이하게 법관 중에서 추천했다”고 밝혔다. 심사 대상 외부 인사라곤 변호사 5명뿐이니, 이들이 부적격자라는 얘기다. 당사자에겐 모욕이고, 이들을 천거한 변호사단체 등도 덩달아 덤터기를 쓴 꼴이다. 추천위 입에서 나왔지만, 그런 얘기는 실은 법원 고위 인사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법관 경력이 없거나 짧은 변호사나 교수가 대법관감이란 말이 나오면 “1인당 연간 3600건인 사건을 제대로 처리할 수나 있겠느냐”며 능력을 의심한다. 100여명의 탁월한 재판연구관들이 보좌하고 상고사건 상당수가 본격 심리 전에 기각된다는 현실은 생략된다. 실력 있다는 변호사에 대해선 “개업한 지 꽤 되어서 돈 문제가…”라고 짐짓 청렴을 걱정한다. “현직 법관 말고 청문회를 통과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말도 한다. 여러 면에서 흠이 없다는 이에겐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마뜩잖아할 것”이라는 등의 이유가 붙는다. 애초 비법관을 뽑겠다는 의지가 없는 듯하다. 그 결과가 ‘서울대 법대 출신, 50대, 남성, 고위 법관’으로 표준화된 지금의 대법원이다. 대법관 14명 중 10명이 꼭 그런 사람이다. 6일 제청된 이기택 서울서부지법원장이 최종 임명돼도 마찬가지다. 나머지 4명 중 3명도 조건 세 개는 채운다. 어떤 멤버십클럽보다 대법원의 배타성은 강고하다. 다양성을 주문하는 외부의 거듭된 권고에도 이번 역시 대법원은 오불관언이었다. 대법원은 요즘 어느 때보다 거침없다. 전원합의체가 ‘13 대 0’의 판결을 잇달아 내놓는다. 그 가운데 ‘형사사건의 변호사 성공보수 약정은 무효’ 판결은 <한겨레>를 비롯한 대다수 언론으로부터 “사법불신 해소의 계기”라며 일치된 환영을 받았다. 변호사들은 반발했지만, 방향과 뜻은 옳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정말 다 잘된 일일까. ‘지금까지는 인정되지만 앞으로는 무효’라는 판결은 참으로 이상하다. 법에서 ‘무효’는 처음부터 효력이 없다는 뜻이다. 성공보수가 반사회질서 행위로 무효라면, 소급해서도 무효인 게 옳다. 법률행위를 두고 ‘이제부턴 무효인데 소급해선 유효’라는 대법원 판결은 법리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자의적인 선 긋기일 수 있다. 좋게 해석하자면, ‘좋은 뜻’을 현실에 안착시키려고 ‘오버’를 한 것이겠다. 오버는 더 있다. ‘앞으로 무효’ 따위는 입법의 영역이다. 법원이 과거의 일에 대한 판단을 맡는다면, 장래 어떻게 하자는 결정은 기본적으로 국회 몫이다. 입법에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은 이해된다. 성공보수 폐지는 1999년 사법개혁추진위원회 때부터 논의되고 17·18대 국회에서도 시도됐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변호사업계의 반발 때문에라도 입법 전망이 어두운 게 사실이다. 좋게 해석하면, 그런 상황에서 대법원은 더 미룰 수 없다고 보고 법원발 사법개혁을 ‘결단’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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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현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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