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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8.20 18:38 수정 : 2015.08.20 18:38

그리 젊지 않은 기자들이 장관을 만났다. 반주를 곁들인 서너 시간의 화기애애한 저녁이 끝난 뒤, 기자 여럿이 따로 술집으로 향했다. 뭔가 많이 헛헛했다고 한다. 기자란 직업은 술이 아니어도 뉴스나 몰랐던 뒷얘기에 취하기 마련이다. 그날 저녁은 풍성한 밥상과 더 풍성한 담소가 있었지만 귀 기울여야 할 뉴스도, 동료와 공유해야 할 정보도 별반 없었다. 헛헛할 만하다. 장관은 내놓을 정보가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속내를 내비칠 ‘사소한 권한’조차 없었던 것일까.

언제부터인지 장관 말이 뉴스거리가 안 되고 있다. 실세라는 최경환 경제부총리나 메르스, 지뢰폭발 등 당장 큰 현안이 터진 경우 외엔 실명이든 익명이든 장관 말이 보도되는 경우를 찾기가 그리 쉽지 않다. 고참의 상투어 같지만, 예전엔 이러지 않았다. 실·국장 등 고위공무원이 소관 정책에 대해 한마디 하는 것은 바로 뉴스였다. 장관의 말은 공식적인 자리든 사석에서든 미묘한 뉘앙스까지 중요했다. 일이 어떻게 되고 있고 앞으로 어찌될지를 시사하는 단서여서, 뉴스가 아니라도 공유해야 할 중요 정보였다. 그런 일은 이제 확연히 줄었다. 언론의 취재환경이 달라진 탓도 있겠다. 하지만 그보다는 장관이나 관료들의 재량과 권한이 달라진 게 더 큰 듯하다.

장·차관에게 실제 인사권이 없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국·과장급 보직 인사는 장관 재량이라고 법에 규정돼 있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선 청와대 재가를 거치는 것이 관행이 됐다. 인사안들이 청와대로 몰리다 보니 최종 결정까지 서너 달 걸리는 게 예사다. 인사혁신처 자료로는 박근혜 정부 출범 후 2014년까지 한 달 이상 인사 공백이 발생한 실·국장급만도 297곳이다. 그런 일은 지금도 그다지 바뀌지 않았다. 몇 달 전 임기가 끝난 한 산하기관장은 아직도 후임자 재가가 떨어지지 않았다며 겸연쩍은 얼굴로 자리를 지킨다. 애초 인사안이 청와대에서 뒤집히는 일도 잦다. 내정 통보를 받은 이가 느닷없이 다른 자리로 튕겨가기 일쑤다. 내정과 재가 사이의 어정쩡한 몇 달 동안은 당사자든 해당 조직이든 제대로 일을 할 수도 없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데 장관인들 일을 할 의욕이 생기겠는가. 인사권도 없고, 대통령에게 대면보고도 못하는 장관의 지시가 공무원들에게 제대로 먹힐 리도 없다. 그렇잖아도 대통령이 깨알 같은 지시로 업무 하나하나를 간섭하는 터이니 ‘받아쓰기’ 말고 달리 궁리할 여지도 많지 않다. 지시사항의 이행 외엔 숨죽이고 멈춘 듯한 ‘마비’는 그래서 만연한다. 국가 발전의 주역이라며 관료조직을 키운 대통령의 딸이 대통령이 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그렇게 움켜쥐고 있다면 열심히, 제대로라도 해야 할 것이다. 요즘 청와대 비서관·행정관들은 저녁 술자리를 그리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침 7시면 이미 출근해 있던 전임 대통령 때엔 새벽 출근 때문에라도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자리를 피했던 사람들이다. 지금은 그런 걱정을 하지 않는다. 아침 출근뿐이겠는가. 북한의 지뢰도발 사태에도 서면·전화보고만 받은 대통령이 평소 근정(勤政)하리라고 그저 믿기는 어렵다. 그런 마당에선 일이 제대로 챙겨질 수도 없다. 뻔히 당·정·청 협의에 참여한 정무수석이 내용을 몰랐다고 뻗댄 5월의 공무원연금 개혁 파동이나 정부의 세제개편안에 청와대가 뒤늦게 제동을 건 2013년의 일 등은 모두 청와대의 기능부전을 보여주는 닮은꼴이다. 일마다 ‘골든타임’을 놓치고 상반된 메시지를 내보내기 일쑤인 요즘의 거듭된 실책도 그 결과다.

여현호 논설위원
다음주면 그런 대통령이 임기 반환점을 지난다. 지난 일보다 앞으로 닥칠 수 있는 일이 더 걱정된다. 실은, 이런 걱정들은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말이다. 진영이니 이념이니를 떠나 걱정의 크기는 다르지 않다. 대통령은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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