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세계 금융위기에 관해 아는 것은 우리가 많이 모른다는 것이다.” 20세기 후반기 경제학을 대표하는 사람의 하나인 폴 새뮤얼슨이 한 말이다. 이는 맥락이 조금 다르지만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질문에 답이 될 것 같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몇 년 전 런던정경대학을 방문한 자리에서 “왜 아무도 그것(세계 금융위기)을 예측하지 못했나?”라고 물어 경제학 교수들을 당황하게 한 바 있다. 세계 금융위기는 경제 전문가들의 ‘무지’를 일깨우듯 불시에 닥쳤다. 2008년 9월15일 미국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 파산을 계기로 본격화하면서 엄청난 파장을 낳았다. 1930년대 대공황 뒤 최악의 경제위기라는 말이 전혀 그르지 않다. 세계경제는 금융위기 여진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몇 가지 지표를 보자. 우선 세계교역의 둔화 추세가 두드러진다. 위기 전인 2000~2007년 세계 수출입 물량은 한해 평균 7.2% 늘어났으나 2008~2014년 증가율이 절반 이하인 3.1%로 떨어졌다. 올해 들어서는 1분기에 1.5%(전분기 대비), 2분기 0.5% 감소했다는 통계마저 나왔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세계화에 제동이 걸렸다고 풀이한다. 경제성장이 타격을 받았으리라는 것은 익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실제로 세계 성장률은 2000~2007년 평균 3.9%에서 2.9%로 낮아졌다. 선진국은 하락세가 훨씬 더 커(2.5%→0.7%) 사실상 침체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미국이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위기 뒤 성장률이 1.1%에 지나지 않는다. 실업률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여전히 높고 디플레이션 걱정을 떨치지 못한 나라가 한둘이 아니다. 불평등 문제도 많이 부각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에는 중국발 격랑주의보가 발령됐다. 중국 금융시장이 불안한데다 실물경제가 부진한 것이다. 구매력 평가기준 세계 1위 경제대국이란 평가를 받는 중국의 이상증세는 세계경제에 큰 악재다. 세계 금융위기 초반에 ‘구조자’ 구실을 한 것과는 딴판이다. ‘중국이 기침을 하면 세계가 독감에 걸린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상황이 됐다. 브라질과 러시아 등 규모가 큰 다른 일부 신흥시장국의 형편은 더 좋지 않다. 이런 우울한 현실을 반영하듯 ‘장기정체론’이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장기정체론은 1930년대 후반 미국에서 제기된 것으로 기술진보가 정체하고 인구증가율이 둔화함에 따라 매우 낮은 수준의 성장률이 이어질 것이라는 가설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현실과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판명돼 폐기됐던 이 가설이 2년 전 다시 등장한 것은 그만큼 상황이 엄중하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미국 재무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와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등이 펴는 장기정체론의 해법은 큰 폭의 부양정책으로 요약할 수 있다. 실질이자율을 0%대 또는 그 이하로 유지하고 재정지출도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진단과 처방이 적절한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드러날 것이다. 정책으로 채택될 가능성도 현재로는 높지 않은 듯하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가 올해 안에 기준금리를 올리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서다. 재정확대 또한 기대하기 어려운데 유럽 국가들이 더 그렇다. 게다가 이런 부양정책 자체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지금 단계에서는 긴축과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정치권에서는 오히려 다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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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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