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발
지난 3일 법무부의 느닷없는 ‘사법시험 폐지 유예’ 입장 발표로 촉발된 혼란은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 반발에 놀란 법무부가 ‘최종의견이 아니다’라고 물러서고, 법무부의 일방적 발표를 꾸짖은 대법원이 ‘갈등해결을 위한 협의체를 만들자’고 짐짓 퇴로를 열어주고, 법무부가 얼른 동조하는 등의 과정을 보면 ‘사시 폐지 유예’가 입법으로 현실화할 동력은 이미 많이 약해진 듯하다. 그렇잖아도 어수선한 국회가 총선 이전에 뜨겁디뜨거운 이 문제를 다룰 여력도, 의지도 없을 터이다. 그럼에도 불은 꺼지지 않았다. 법무부는 기존 발표를 취소하지 않은 채 여전히 어정쩡하게 서성대고,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학생들이 검찰실무 과목 시험을 거부하는 등 갈등도 현재진행형이다. 이대로 가면 내년 1월 변호사시험까지 파행을 겪게 되고, 2월말 사시 1차 시험이 현행법대로 마지막 1차 시험이 될지를 두고서도 갈등이 재연될 것이다. 사태의 책임이 법무부에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2017년 사시 폐지는 이미 7년 전에 법으로 선언된 국가의 ‘약속’이다. 법조인이 되려는 이들은 그에 맞춰 자신의 진로를 정했다. 법조일원화 등 사법개혁도 로스쿨 제도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진행돼왔다. 지금 와서 이를 뒤집는다면 국가가 국민의 뒤통수를 치는 것이고, 법적 안정성을 보장해야 할 정부가 되레 이를 허무는 게 된다. 그런 일을 법무부는 사전 협의나 의견수렴도 없이 저질렀다. 발표 뒤 허둥대는 모습이나 발표 내용을 보면 충분한 검토와 준비 없이 졸속으로 저지른 일이 분명하다. 생각 없이 성냥불을 던졌다가 불길에 화들짝 놀란 꼴이다. 그런 어설픈 방화범이 실제 누구인지 궁금하다. 정부의 잘못은 사실 더 심각하다. 8회째 신입생을 뽑는 로스쿨 제도에 크건 작건 수리가 필요하다는 데는 다들 공감하는 터다. 어디부터 어떻게 고칠지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인데, 법무부 발표로 대뜸 주먹다짐부터 벌어졌다. 철거하기로 한 가설물을 그냥 두자거나 또 다른 가설물을 설치하자는 주장을 놓고 지금처럼 괜한 싸움이 계속되면 수리할 때를 놓친 건물은 영영 비틀려 결국 허물어지게 된다. 로스쿨은 꽤 오랫동안 준비되고 설계된 제도다. 1995년 공론화가 시작돼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10년 넘게 논의를 거듭해 만든 것이다. 애초 로스쿨 도입에 반대하던 대법원과 법무부가 결국 찬성 쪽으로 돌아섰던 것은 변화된 사법환경과 사시의 누적된 폐해를 그냥 둘 수 없었기 때문이겠다. 사시 폐지는 그런 사회적 합의의 결과다. 이를 번복하려면 그때 이상의 국민적 합의 절차가 필요하다. 로스쿨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사시 혹은 이와 별반 다를 바 없을 예비시험의 더 큰 폐해로 덮자거나 당분간 미봉하자는 것은 뻔한 퇴행과 갈등을 되풀이하자는 무모한 시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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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현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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