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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2.29 18:48 수정 : 2015.12.29 19:10

2012년 ‘한나라당’을 ‘새누리당’으로 바꿨을 때만큼 당명 논란이 심했던 적은 드물다. 선관위 디도스 공격과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으로 최악의 상황에 몰린 한나라당은 19대 총선을 불과 두달 앞둔 그해 2월 ‘새누리당’이란 이름으로 당 간판을 바꿔 달았다. “‘새로운’의 ‘새’와 ‘나라, 세상’의 뜻을 가진 ‘누리’를 합쳐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상’을 뜻한다”고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박근혜)는 설명했다. 당원과 지지자들은 들끓었다. “특정 종교(새누리교회) 편향이다”라는 불만부터 “완전히 새 됐다. 철새들 집합지냐”는 비아냥까지 비난이 쏟아졌다.

그랬던 새누리당이 지금은 40% 안팎의 지지율로 야당을 압도하고 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선 참패 예상을 깨고 152석을 얻어 원내 제1당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그 뒤 누구도 당명을 갖고 시비를 걸진 않는다. 요즘 칼날 위에 선 새정치민주연합이 당명을 ‘더불어민주당’으로 급히 바꾼 데엔, 이런 사례가 적지 않은 참고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총선 승리가 당명 개정 덕이 아니란 점은 분명히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당시 박근혜 위원장이 꾸린 비상대책위엔 김종인, 이상돈, 이준석 등 한나라당 성향과 거리가 먼 참신한 인사들이 대거 참여했다. 한나라당은 기본 노선도 대폭 수정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건설을 핵심으로 한 새로운 정강정책을 내놓았다. ‘따뜻한 보수’라는 구호도 들고나왔다. 이런 ‘혁신적인’ 변화 속에서 당명 개정도 이뤄졌다. ‘새누리당’이란 명칭이 적절하냐와는 별개로, 적어도 ‘당의 노선과 방향을 바꾸니 당 이름도 바꾸는 게’ 전혀 어색할 게 없었다. 새누리당은 총선에서 당 이름 교체가 아닌 총체적인 변화 시도를 통해 국민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경제민주화와 따뜻한 보수라는 구호가 거짓이었음을 많은 유권자들이 깨달은 건 불행히도 그해 12월 대선이 끝난 뒤였다.

그에 비하면 더불어민주당은 지금 어떤가. 불과 1년9개월 전 선택한 ‘새정치민주연합’이란 이름을 서둘러 바꿀 만큼 근본적인 체질 혁신과 노선 재정립을 국민에게 보여주고 있는가. 아무리 봐도 그렇지가 않다. 당명 교체 외엔 다른 혁신과 변화를 알아채기 어렵다. ‘더불어민주당’의 탄생을 보면서 기대보다 우려가 앞서는 건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당 이름은 정체성과 노선을 가장 단순하고 상징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게 좋다. 1854년 <뉴욕 트리뷴>편집인 호러스 그릴리는 새 정당의 이름으로 ‘공화당’을 제안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노예제의 옹호자가 아닌 자유의 주창자로서, 미 연방의 복원을 표현하는 가장 적합하고 단순한 단어로 ‘공화당’만한 게 없다.” 그렇게 명명된 공화당은 160년째 그 이름을 고수하고 있다. ‘백년 정당’은 고사하고 십년이라도 지속하는 당을 만들려면 이런 고민이 당명 정하는 작업에 녹아 있어야 한다.

박찬수 논설위원
‘민주’를 얘기하면 ‘낡은 진보’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요즘 상황을 보면 민주주의 기본 원칙조차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린 건지 매우 의심스럽다. 그런 점에서 제1야당 이름(약칭)에 ‘민주’를 복원한 건 다행이다. 다만, 이제 좀 귀에 익숙해진 ‘새정치’란 단어를 굳이 뺄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새 이름을 둘러싼 논란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이다. 정말 중요한 건 앞으로 더불어민주당이 누구와 더불어 갈 것인지 밝히고, 더불어 가겠다는 약속을 국민이 신뢰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더불어 갈 ‘누군가’가 익히 예상하는 범위를 벗어나야 감동이 있다.

박찬수 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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