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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1.21 18:41 수정 : 2016.01.21 18:41

박근혜 대통령에게선 여러 얼굴이 보인다. 아버지를 닮은 구석이 아무래도 많겠지만, 요즘은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 마오쩌둥의 면모도 보인다. 사람됨이 아니라 발상과 양태가 그렇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은 18일 정부 부처 합동 업무보고에서 재계가 주도하는 경제활성화 입법 촉구 서명운동을 언급하며 “오죽하면 국민들이 그렇게 나섰겠는가, 국회가 그 역할을 못하니까 국민들이 나서서 바로잡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회의 직후에는 부근 서명대를 찾아 직접 서명하는 모습도 연출했다. 대통령은 앞서 13일 대국민담화에서 경제활성화 관련 법안 처리에 “국민이 나서 달라”고 호소했다. 재계는 그즈음 서명운동에 착수했다.

1966년 8월7일 마오쩌둥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제8기 중앙위 제11회 총회 회의장에 ‘사령부를 포격하라-나의 대자보 한 장’이라는 제목의 글을 배포해 “반동 자산계급의 입장에 선 몇몇 지도자 동지”를 비판했다. 마오의 ‘대자보’는 문화대혁명을 촉구한 <인민일보> 사설과 베이징대학 대자보를 언급하면서 “어쩌면 이토록 훌륭하단 말인가”라고 찬양했다. 마오는 총회 직후인 8월18일 천안문 성루에서 홍위병을 상징하는 붉은 완장을 찬 것을 시작으로 그해 11월까지 8차례에 걸쳐 전국에서 온 홍위병 1000여만명을 접견해 ‘조반’(造反)을 선동했다. 대약진운동 참패로 권력 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마오는 1965년 말부터 측근 ‘4인방’을 앞세워 문화대혁명 여론을 조성해왔던 터였다.

그 뒤의 장면은 다 아는 바고, 보는 그대로다. 홍위병들은 최고권력의 손짓대로 류사오치 국가주석 등 지도자들을 타도 대상으로 삼고 떼로 덤벼들어 실각시켰고, 심지어 죽게까지 했다. 마오가 사망한 1976년까지 중국은 극심한 혼란과 퇴보를 겪었다. 지금 여기서도, 국가기구인 국회가 ‘국민적 저항의 대상’으로 지목된다. ‘무소불위의 입법권력’을 규탄하는 서명운동에는 기업이나 협회 등이 조직적으로 동원되고, 심지어 대통령이 “진실한 사람”으로 꼽는다는 여당 국회의원까지 참여했다. 최고권력이 대중동원으로 국가기구를 압박한다는 발상은 놀랍도록 닮았다.

다행히도 지금의 서명운동엔 문혁의 그런 광기는 아직 없다. 규모나 자발성도 비교할 수 없겠다. 하지만 그것만큼이나 무서운 ‘침묵의 복종’이 있다. 대통령의 서명 참여는 청와대의 공식 참모 라인도 모른 채 결정되고 실행에 옮겨졌다고 한다. 비서들은 “대통령님이 결정하신다는 것을 저희가 어떻게…”라고 말한다. 알았던들 뭐라 말할 수도 없었다는 얘기다. 서명을 주관한 재계 단체에서도 대통령 서명엔 애초 걱정이 많았지만 이견을 용납하지 않는 대통령의 뜻을 거스를까 봐 반대하지 못했다고 한다. 아무도 맘속에 있는 ‘그건 아닙니다’를 입 밖으로 내놓지 못한 채 일이 벌어지고, 또 그렇게 저질러진 대통령의 뜻대로 꾸역꾸역 후속 작업이 이어진다. 몇 달 전 대통령이 주창한 ‘청년희망펀드’도 그렇게 추진됐지만 자발적으로 돈이 모인 것도 아니었고, 애초 그려졌던 모습도 결코 아니었다.

여현호 논설위원
딱 그 정도다. 대통령과 주변 극소수 보좌진은 국회는 물론, 촘촘히 짜인 부처 관료조직이나 우수한 인재들이 모였다는 대통령비서실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다. 결정 과정에서 이들 기구가 제동을 걸거나 영향을 끼쳤다는 말은 별로 들리지 않는다. 대통령에게 그들은 지시의 수령자일 뿐이다. 당연히 다들 입을 닫게 된다. 소통 구조는 진작에 붕괴하고, 힘과 의지는 아래로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다. 병뚜껑만 헛도는 모습이 꼭 이렇겠다. ‘역대 정부’ 누구도 국가의 온갖 기구를 이처럼 무력화하고 스스로 파괴하진 않았다. 나중에 정상으로 복원될 수나 있을지 걱정된다. 지금이라도 말려야 하지 않겠는가.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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