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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3.14 17:13 수정 : 2017.03.14 19:02

박찬수
논설위원

“나는 중도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다.” 리처드 닉슨이 정치적 위기에 처했을 때 한 말이다.

1952년 아이젠하워의 러닝메이트로 공화당 부통령 후보가 된 닉슨은 불법 정치자금 의혹에 휘말려 거센 사퇴 압력을 받았다. 그때 닉슨이 결백함을 주장하며 했던 말이 바로 “나는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다”(I’m not a quitter)였다. 미국에서 닉슨만한 집념의 정치인을 찾기도 쉽지 않다. 그렇게 버텨서 39살의 젊은 나이에 부통령이 됐다. 1960년 대통령선거에서 존 에프 케네디에게 패배한 뒤엔 거리낌 없이 다시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도전했다. 이런 권력에 대한 집착이 탁월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정치인 닉슨의 부정적 이미지를 키우는 데 일조했다.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말했을 때 닉슨의 이 말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두 사람 다 의회의 탄핵소추를 받았고, 대통령직을 그만두는 그 순간까지(닉슨은 상원의 탄핵 표결 직전에 스스로 물러났고 박근혜씨는 파면됐다는 게 다르긴 하지만)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너무 흡사하다. 박 전 대통령의 말은 곧 “나는 포기하지 않고 국민과 싸우겠다”는 뜻이다.

1974년 8월 닉슨은 대통령 사임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중도 포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 저는 미국의 이익을 앞세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내일 정오를 기해 대통령직을 사임하려고 합니다. 저는 이번 결정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에서 생겼던 모든 상처를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과 이걸 은폐하려 국민에게 거짓말을 했던 부분에 관해 ‘유감스럽다’(regret)고 말했을 뿐 사과(apology)하지는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소명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해 죄송하게 생각한다. 이 모든 결과는 제가 안고 가겠다”고 말한 것과 다르지 않다. 그걸 두고 친박 의원들이 ‘그 정도면 헌재 결정을 수용한 거 아니냐. 더이상 왈가왈부하지 말고 검찰 수사를 중지하라’고 요구하는 건 진실의 호도일 뿐이다.

닉슨으로 인해 미국 대통령제는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가장 큰 불행은, 더는 국민이 대통령과 정부를 믿지 않게 됐다는 점이다. 정부와 의회 신뢰도는 급격히 떨어졌다. 1960년대 존 에프 케네디처럼 국민 모두의 사랑을 받는 대통령은 더이상 나오지 않았다. 지금 트럼프 시대를 상징하는 정치적 불신과 분열의 뿌리는 닉슨이 국민을 속인 데서 비롯했다 해도 틀리지 않다.

그래도 닉슨은 나중에 국민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사임하고 3년이 지난 뒤인 1977년 데이비드 프로스트와의 인터뷰에서였다. 닉슨은 “나는 친구들과, 국가와, 우리 정부 시스템과, 그리고 공무원이 되려는 수많은 젊은이들을 실망시켰다. 나는 미국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고, 이것은 내가 평생 지고 가야 할 짐이다. 내 정치생명은 끝났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정치생명을 스스로 닫고 국민에게 사과하는 걸 보긴 어려울 것 같다. 친박 의원들이 개인 비서를 자처하며 다시 정치세력화하려는 게 그 징표다.

1994년 4월 닉슨이 사망했을 때 5명의 전·현직 대통령이 장례식에 참석한 건, 미국민이 그의 사과를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지금 박근혜씨는 국민에게 용서받을 기회마저 스스로 차단하고 있다. 많은 사람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이 행동이 박근혜씨에겐 오랫동안 매우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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