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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5.18 16:51 수정 : 2017.05.18 20:48

여현호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검찰이 변화에 둔감하다는 말은 검찰 자신도 하는 얘기다. 이명박 전 대통령부터 “검찰은 외부 변화에 느리게 적응하는 조직문화가 있다”고 말했다. 2010년 12월의 말이니,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듬해다. 검찰을 정치 도구로 마구 휘두른 것과 그런 지적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다.

그래서 ‘그저 하는 말’이었던 모양이다. 2011년 8월 권재진 법무부 장관은 “국민은 변화에 둔감하고 조직의 이익만 앞세운다는 이유로 법무부와 검찰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조직문화를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그런 노력이 있기나 했는지 모르겠다. 2013년 4월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 취임사도 “‘변화에 둔감하고 조직 이익만 앞세운다’는 국민의 차가운 시선은 우리의 자기반성과 성찰이 부족했음을 반증한다”고 돼 있다. 몇달 뒤 그는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개입 논란으로 물러났다. 반성하고 성찰했다면 그리됐을까.

둔감하기로는 ‘돈봉투 만찬’ 사건이 압권이다. 술자리에서 서로 돈봉투를 돌린 서울중앙지검과 법무부 검찰국은 ‘뭐가 문제냐’는 투로 반응했다. ‘관행’이라는 주장이다. “우리는 술 먹지 말라는 말이냐”고 짜증도 냈다. 온 국민이 놀라 들끓고 대통령이 심각하게 여기는데도 무감각했다. 그런 관행을 용납하지 못하게 된 세상의 변화를 실감하지 못한 것이겠다. 청와대의 감찰 지시 전까지 검찰은 그렇게 시간을 허비했다. 외부 변화나 통증에 둔감한 낡고 공룡 같은 조직이기에 그랬을 것이다.

그 때문에라도 이번 일은 검찰개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 과정이 검찰에게 익숙한 길도 아닐 것이다. 그동안의 검찰·사법 개혁은 지지부진하다 흐지부지 끝났다. 2005년 1월 출범한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는 26개 개혁법안 가운데 6개만 성사시킨 채 이듬해 11월 해산했다. 2010년 3월 구성된 사법제도개혁특위도 별 소득 없이 이듬해 6월 활동을 마쳤다. 검찰은 논의의 홍수 속에 충분한 시간을 두고 방어전을 폈다. 이번에도 대비는 있었던 모양이다. 김수남 전 검찰총장은 이임사에서 “검찰개혁은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이 무엇인지가 기준이 될 것입니다. 수사의 중립성과 공정성, 효율성을 담보할 수 있는지도 검토되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검찰권력의 분산과 견제’ 대신 검찰이 내세우려던 프레임이겠다. 하지만 검찰만 과거에서 배운 게 아니다. “우리가 너무 나이브하게 생각했는지 몰라요. 정치적 중립성이 해결되면 검찰의 민주화까지 따라온다고 생각했어요.” 노무현 정부 시절 민정수석을 지낸 문재인 대통령이 2011년에 한 말이다. 확실한 제도 없이 ‘선의’만 앞세웠더니 되레 칼날로 돌아오더라는 뼈저린 경험담이다. 검찰에 검찰개혁을 맡겨선 안 된다는 교훈도 개혁 논의 기구에 앞서 인적 쇄신부터 서두르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교수 출신 민정수석에 이어 비검찰 출신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까지 거론되는 것도, 따지자면 검찰의 업보다. 검찰은 이제 ‘해오던 대로’가 통하지 않는 상황 앞에 섰다. 그리된 게 검찰뿐일까. 세상의 관심과 질타는 최우선 개혁대상이라는 검찰만 향하는 게 아니다. ‘그들만의 세상’이나 ‘당신들의 천국’이 더는 묵인되지 않고, 어느 쪽이건 기존의 권위가 쉽게 부인된다. 엘리트 법관의 발탁 구조를 축으로 움직이던 법원 사회가 뿌리부터 도전받고 있는 것이 그렇거니와, 언론에 대한 날선 다그침도 거대한 태풍의 한 가닥이다. 이제는 하던 일을 해오던 방식 그대로 하기는 어렵게 됐다. 뭐든 바뀌어야 한다.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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