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7.20 18:21
수정 : 2017.11.15 22:49
안재승
논설위원
최저임금 인상 결정 이후 보수언론이 쏟아내는 보도를 보면 한국 경제가 곧 거덜이 날 것 같다. 자영업자들이 줄폐업을 하고, 일자리가 날아가고, 물가는 뛰고, 세금만 퍼줘 그리스 꼴이 나게 됐다고 겁을 준다. 자유한국당은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고 저주에 가까운 논평을 냈다. 최저임금 노동자들이 졸지에 ‘경제 파탄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다.
이번 최저임금 인상액이 1988년 제도 도입 뒤 최대라고 하지만, 일급 기준으로 내년에 8480원 오른다. 아이스커피 2잔 값이다. 인상률 16.4%가 역대 4번째라고 하지만, 월급 기준으로 주휴수당까지 포함해 157만원이 된다. 한국노총이 계산한 올해 1인 가구 노동자 한달 표준생계비가 216만원이다. 정부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최저임금 인상분 중 3조원을 직접 지원하기로 했다. 재벌(상호출자 제한 기업집단)에 2015년 깎아준 법인세가 5조7천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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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 산하 비정규직 조합원과 시민단체 회원 등이 6월3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최저임금 1만원’과 ‘비정규직 철폐’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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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묘하게 사실을 비트는 보도가 한둘이 아니다. 한 신문은 9급 공무원 1호봉 기본급이 139만5천원이어서 최저임금과 맞추려면 12.8% 인상해야 하고 1급까지 연쇄 작용을 일으켜 내년에 공무원 인건비가 추가로 4조원 넘게 들어간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공무원은 법적으로 최저임금 적용 대상이 아니다. 또 기본급에 매달 지급되는 직급보조비 12만5천원과 기타 수당을 합치면 9급 1호봉의 급여는 179만원이다. 최소한의 기본생계비가 절실한 최저임금 노동자와 신분이 안정되고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는 공무원을 끼워 맞추는 발상이 놀랍다. 또 다른 신문은 최저임금에 숙식비가 포함되지 않아 이주노동자가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고 ‘국부 유출’이 우려된다고 주장한다.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업체 대부분이 숙식비를 월급에서 공제하고 있는 현실을 왜곡하는 기사라고 현장에선 분노한다.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 폭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게 큰 부담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이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의 근본 원인을 최저임금 탓으로 돌리는 것은 명백한 사실 왜곡이다. 이들 역시 불공정한 경제구조 속에서 오랜 세월 짓눌려왔다.
자영업자만 보더라도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투,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 고삐 풀린 상가 임대료 때문에 이미 한계 상황에 봉착했다. 서울시가 지난해 9월 프랜차이즈 가맹점 1328곳을 조사했는데, 본사에서 공급받는 원부자재 등을 가맹점주가 직접 구입하면 한달 평균 110만원의 비용 절감이 가능했다. 내년도 최저임금 한달치 인상액 22만원의 5배다. 프랜차이즈가 ‘자영업자의 무덤’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갑질 이상으로 무서운 게 임대료다. 엊그제 회사 앞 김치찌개집에 갔는데, 주인 얘기가 다음달에 가게를 옮기게 됐다고 한다. 건물주가 갑자기 한달 임대료를 150만원에서 280만원으로 올려달라고 해 더는 버티기 어렵다는 것이다. 법에 호소해보라고 했더니 그게 가능하겠느냐며 이미 체념했다고 한다. 강제로라도 임대료 인상을 억제하고 안정적으로 장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주지 않으면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한다.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분을 직접 지원하는 것은 지속 가능한 대책이 되기 어렵다. 응급처방일 뿐이다. 답은 ‘경제 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 추상적인 얘기가 아니다. ‘갑’의 고통 분담을 이끌어내 ‘을’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게 경제 민주주의다. 최저임금 문제를 을들의 싸움으로 몰아간다면 한국 경제가 앓고 있는 중병을 더 키우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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