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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8.10 17:56 수정 : 2017.08.10 20:37

여현호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한때의 해양제국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의 코메르시우 광장은 테주강에 면한 남쪽을 제외한 세 면이 모두 정부부처 건물이다. 원양선에서 막 내린 기분으로 강변 계단을 오르면 광장 북쪽 메인스트리트로 통하는 개선문의 좌우로 법무부와 최고재판소가 자리 잡고 있다. 큰 건물들은 아니다. 회랑 사이로 명판도 잘 보이지 않는다.

자리 잡은 모습대로, 최고재판소는 법무부에 많은 부분을 의지한다. 꽤 오랫동안 사법행정의 대부분을 몇 발짝 건너 법무부가 행사해왔다. 근래 최고사법위원회를 만들어 대법관·법원장 임명권 등을 맡긴 것도, 일종의 독립 노력이다.

물리적 거리와 위치는 종종 관계를 상징한다.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후 40년이 넘도록 법원과 검찰은 광화문 정부청사에 가까운, 서소문 덕수궁 옆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1989년에야 서초동으로 서울고·지법, 서울고·지검이 이사했고, 대법원과 대검도 1995년 서초동에 큼직한 청사를 각기 마련했다. 그즈음인 1988년 소장판사들이 법관의 청와대 파견 중지 등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한 제2차 사법파동이 있었고, 1993년에는 정치권력에 협력해온 사법부의 자기반성을 촉구하는 제3차 사법파동이 벌어졌다. 멀어진 거리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영향이 있진 않았을까.

이제 바꿔야 할 것은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다른 무엇이다. 예컨대, 과천의 법무부와 서초동의 검찰은 물리적 거리보다 훨씬 가까운 관계다. 법무부 전체 업무에서 검찰 일은 고작 몇 분의 일이지만, 인사는 완벽하게 한 몸이다. 법무부 보직 65개의 절반 정도가 검사 몫이었고, 파견 검사는 70명이 넘었다. 엘리트 검사들이 대검과 법무부, 서울중앙지검을 오가는 관행은 이번 검찰 인사로 일부 깨어졌다지만, 그래도 법무부에서 검사 아닌 사람에게 넘겨진 자리는 몇 안 된다. 법무부는 여전히 ‘검찰 제국’의 영토다.

그런 해묵은 ‘관계’부터 끊는 게 개혁이다. ‘법무부 탈검찰화’는 검찰의 힘을 줄이는 차원만이 아니다. 법무부는 검찰이 아닌, 법조 전체의 행정기구여야 한다. ‘작은 내각’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다양한 법무부의 업무를 검찰이 독점적으로 장악하는 게 정상은 아니다. 검찰국 외의 나머지 보직을 검사 아닌 사람으로 채우지 못할 이유는 없다. 대신 맡을 외부 인력이 아직 덜 갖춰졌다지만, 새로 오는 검사들도 매년 생판 낯선 업무를 맡아온 터다. 굳이 검사가 필요하다면 파견이 아니라 사직하고 오면 될 일이다.

‘새로운 관계 맺기’는 이미 여러 곳에서 시작된 듯하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국회에 직접 출석하고 기자들과도 정기적으로 만나겠다며, “검찰도 이제 국민으로부터 직접 통제받고 견제받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와 언론의 ‘민주적 통제’를 받겠다는 뜻이다. 청와대 등 정치권력의 통제를 대체하겠다는 것이라면, 검찰의 선 자리를 바꾸겠다는 큰 변화의 다짐이다. 법원도 변화가 임박했다. 국회 개헌특위에선 국회·대통령·법관대표기구가 사법평의회를 만들어 사법행정 전반을 맡기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명분은 사법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다. 법원 안에서도 법관대표기구가 인사 등 사법행정의 의결권을 갖는 방안이 거론된다. 내부 민주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어떤 모습으로 귀결되든, 제왕적 대법원장 혹은 소수 사법 관료가 휘두르던 시절은 이제 지났다고 봐야 한다. 바야흐로 사법기관들의 위치 조정이 전방위로 본격화했다.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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