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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9.05 17:13 수정 : 2017.09.05 19:04

여현호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휴가 중 산을 오르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지명 소식을 들었다. 소식을 전한 이와는 ‘대법원 탄핵’이라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보수 성향 전·현직 대법관만이 아니다. ‘독수리 5형제’ 등 진보적인 전직 대법관들도 어떤 경위에서건 결국 선택되지 않았다.

알아보니, 인선 초기 전수안 전 대법관이 후보자로 강력하게 추진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편으론, ‘법원 전체를 크게 바꿀 파격적 카드’도 그즈음 진지하게 검토됐다고 한다. 장고 끝에 ‘큰 그림’은 포기됐다. “정치인 문재인”으로선 격렬한 반발 가능성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전 전 대법관이 한사코 고사하고 박시환 전 대법관까지 사양하면서, ‘대안 모색’은 급물살을 탔다.

모색의 기준은 ‘한층 젊은 시각’이었던 듯하다. 기왕에도 젊은 판사들 사이에선 법원 내 개혁세력의 상징이던 우리법연구회 비판론이 있었다. 연구회 출신 변호사들이 ‘전관’으로 보인 모습이 실망스럽다거나, 모임 창립회원인 박 전 대법관의 과거 판결에 일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지금의 제왕적 대법원장과 사법관료화가 우리법연구회 출신이 법원행정처 등에 중용된 때부터 고착·심화했다는 주장도 공공연했다. 사법개혁 업무를 맡는 청와대 법무비서관에 우리법연구회 다음 세대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 기용된 것은 우연이 아닐 수 있다.

시대가 바뀌었음은 확연하다. 전수안·박시환 등이 거명된 것은 사법연수원 기수, 지연 등 ‘오래된 기준’에서였다. 새 기준에선, “대법관 출신은 근본적 개혁을 이끄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겠다. 파격이 불가피할 정도로 사법개혁은 시대적 당위다. 다음주 국회 인사청문회에 나설 김명수 후보자가 대법원장이 되면 해야 할 일은 바뀐 시대에 맞게 새로운 법원을 설계하고 건축하는 일이다. 무엇보다, 대법원장 아래 직위·기수 차례로 3천여명 법관이 줄 세워진 지금의 구조부터 비정상이다. 행정부 조직처럼 상명하복해야 한다는 착각이 일상화할 수 있다. 일부만 승진되는 발탁 시스템도 관료화로 이어지기 쉽다. 법관이 그렇게 통제 대상이 되면 헌법상의 ‘재판의 독립’이 위협을 받게 된다.

눈앞의 법조 일원화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법원 재건축’은 긴급하다. 10년 이상 법조 경력자 중에서 법관을 임용하는 전면적인 법조 일원화는 2026년부터지만, 당장 내년부터는 5년 이상 경력자 중에서, 2022년부터는 7년 이상 경력자 중에서 법관을 뽑아야 한다. 충분한 사회적 경험과 연륜을 갖춘 ‘완성된 법률가’를 법관으로 임용한다는 제도의 취지로 보면, 젊은 판사의 도제식 교육에 무게가 실린 지방법원 배석판사 제도는 더는 유지되기 어렵다. 애초 법조 일원화 시대의 법원은 1·2심 법원과 법관의 분리, 전보와 승진이 없는 평생법관 제도로 구상됐던 터이기도 하다. 실력이나 인품에서 상급심 법관에게 모자랄 게 없는 판사들이 하급심에 자리를 잡으면 개별 법관의 재판 독립은 명실상부한 현실이 될 수 있다. 지금의 중앙집중식 법관 인사제도는 그런 시대에 맞지 않는다.

바꿔야 할 것은 많다. 엘리트 법관이 주도해온 기존의 사법체제가 이제 효용을 다했다면, 법원 내부의 민주화를 촉진하고 변호사와 일반 국민의 참여를 확대하는 제도의 도입이 당연하다. 각급 법관회의의 실질화, 민형사 배심제 확대, 집단소송 제도, 형사 공공변호인 제도 등 논의되고 검토된 방안은 많다.

모두 잘 다듬어 추진하면 가능한 일이다. 6년 임기 동안 새 대법원장의 책무이기도 하다. 혹시 준비가 늦어지거나 방치되진 않았는지 걱정스럽기는 하다.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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