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10.31 18:27
수정 : 2017.11.06 09:11
안재승
논설위원
“취업준비생 자녀를 둔 부모 심정으로 채용비리를 근절하겠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지난 27일 ‘공공기관 채용비리 근절 대책’을 발표하면서 한 말이다. ‘부모 심정’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와 닿았다. 진정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공공기관 330개, 지방공기업 149개, 공직유관기관 610개 등 1089곳을 대상으로 과거 5년간 채용업무 전반을 조사하기로 했다. 또 ‘채용비리 신고센터’를 개설해 제보가 접수되면 5년의 기간과 관계없이 조사할 방침이다. 비리 연루자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적용하는 등 ‘무관용의 원칙’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채용비리에 국민적 분노가 들끓으면서 정부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을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28일치 1면 머리기사에서 “조사 대상 기간을 5년으로 한정해 전 정권을 겨냥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며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준용씨의 한국고용정보원 입사 특혜 의혹은 10년 전 일이라 조사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썼다. ‘정치보복 프레임’을 씌우려는 의도로 읽힌다. 그런데 같은 기사에서 “5년간 입사자가 10만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무슨 수로 파악하겠느냐”며 “조사의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고 썼다. ‘왜 5년으로 국한했느냐’고 종주먹을 들이대더니, 그 5년도 ‘조사 대상이 너무 방대해 실효성이 의문’이라고 비판한다. 횡설수설이다.
자유한국당은 “보수정권 9년뿐 아니라 좌파정부 10년까지 포함해 조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19년치를 조사하자는 것으로 전형적인 ‘물타기’다. 자유한국당은 강원랜드 채용 청탁자 명단에 소속 의원 5명과 전직 의원 2명이 포함된 사실이 속속 드러났지만 침묵으로 일관했다. 사과는커녕 입장 표명 한마디 없었다. 대신 정우택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은 ‘문준용 취업 특혜의혹 특검법’에 협조하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와 <한국경제>는 ‘물갈이 의혹’을 제기했다. 현 정부가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들을 퇴출시키기 위한 압박수단으로 채용비리를 이용하려 한다는 것이다. 채용비리가 드러나면 기관장이 책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채용비리 근절 대책을 ‘정치적 의도’로 몰아가려 한다. 의혹이라고 다 의혹이 아니다. 합리적 근거에 바탕을 두지 않은 의혹 제기는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번 채용비리 근절 대책도 한계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낙하산 인사’ 방지 대책이 빠져 있다. 전문성이 없는 외부 인사가 낙하산을 타고 경영진으로 내려오는 공공기관은 채용비리의 온상이 되기 쉽다. 자신을 밀어준 권력자의 청탁에 취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강원랜드 채용비리 당시 사장인 최흥집씨는 2011년 한나라당 강원지사 후보 경선에서 떨어진 뒤 석달 만에 사장에 취임했다. 채용비리를 뿌리뽑으려면 낙하산 인사부터 막아야 한다.
민간기업의 채용비리 대책도 필요하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우리은행이 지난해 신입사원 공채에서 국가정보원과 금융감독원 관계자 자녀 등 16명을 특혜 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채용비리는 민관의 구분이 없다. 정부가 민간기업에 직접 관여하기는 어렵지만, 제도 개선을 통해 채용 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은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나오는 채용비리를 보면서 취업준비생들은 박탈감과 좌절감을 넘어 사회에 대한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이번만큼은 흐지부지 끝나게 해선 안 된다. 괜히 딴죽이나 걸 일이 아니다. 채용비리가 더는 발붙이지 못하도록 ‘부모 심정’으로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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