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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1.07 17:53 수정 : 2017.11.07 19:03

여현호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친구 ㄱ은 무단횡단을 하지 못한다. 한적한 동네 길의 횡단보도가 사람들의 동선에서 멀리 그어져 있는데도 굳이 불편을 무릅쓰고 돌아서 온다. 판사를 그만둔 뒤 ‘사회 적응을 위해 소소한 교통법규 위반 정도는 저질러보라’고 농 삼아 부추겼지만, 안 되겠다고 한다. 법을 어기는 일을 머리와 몸이 견디지 못하는 탓이다.

판검사 출신이 다 그렇진 않다. 오히려 현직 판검사들의 범죄적 일탈은 요즘 부쩍 잦다. 성추행·성매매 등을 저지른 몇몇 판사의 잘못도 결코 가볍지 않지만, 검사들의 일탈은 종종 심하게 도를 넘는다. 진경준 전 검사장은 부장검사 시절 재벌그룹 내사 사건을 무혐의 처리한 뒤 자신의 처남에게 거액의 용역을 맡기도록 한 제3자뇌물수수 혐의로 1·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사건을 놓고 ‘거래’를 한 것이니, 기소권과 수사권을 한 손에 쥔 검사로선 최악의 범죄다.

7일 구속된 장호중 전 부산지검장이 지난달 29일 검찰의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수사'를 방해하는데 관여한 의혹에 대해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서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검사로선 있을 수 없는 범죄가 또 드러났다. 장호중 검사장은 국가정보원 감찰실장이던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비해 가짜 사무실을 만들고 허위 서류를 갖다둔 혐의로 구속됐다. 장 검사장 등은 검찰과 법원에서 증인들이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하도록 하고 주요 증인을 빼돌린 혐의도 받고 있다. ‘가짜 증거를 심고’, 위증을 교사하는 것은 국가의 형사사법 기능을 적극적으로 침해하는 사법방해다. 그런 일을 다른 사람도 아닌, 검사들이 저질렀다.

이런 일이 개인적 일탈일 순 없다. 검사들의 범법에는 국정원 조직의 요구와 압박이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는지를 정할 때 주변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한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구성원이 사회규범의 범위를 넘어서는 행동을 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도덕성 범주를 수정해, 그런 행동을 모델로 삼게 된다는 것이다.(댄 애리얼리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요컨대, 국정원장을 비롯한 조직 전체가 사건 은폐라는 범죄로 치닫자 검사들도 휩쓸려 어느새 도덕성이 마비됐다는 이야기다. 그런 일이 한두 차례였겠으며, 그런 조직이 국정원뿐이겠는가.

검사들이 그렇게 되기까지 전 단계가 없을 수 없다. 무슨 일이든 자신, 혹은 조직의 뜻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경험이 쌓여 있었기에 어느 순간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 검사의 권한은 크다. 어떤 사건을 얼마나 수사하느냐에서부터, 기소할지 말지, 기소 이후 처분까지 다 정할 수 있다. 권한을 잘못 쓴 사례는 많다. 회의록 불법 유출은 무혐의 처리하고 엉뚱하게 대화록 삭제 혐의만 기소했다가 1·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2013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수사가 대표적이다. 결정은 법적 원칙과 무관했다.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권한을 그렇게 휘두르면서 검사들은 일상의 부정에 점차 무뎌졌을 것이다. ‘검찰 과거사’는 그렇게 쌓였다.

부정과 일탈을 막으려면 원칙을 분명하게 상기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검사들이 사건 처리 이후에도 시효와 관계없이 퇴직 뒤까지 명예가 손상될 수 있는 일이 이뤄지고 있어, 후배 검사들이 우리 때보다 더 큰 책임과 부담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대로, 원칙을 어긴 잘못은 언젠가 추궁당한다는 원칙만 분명히 서 있어도 잘못의 재발은 줄일 수 있다.

불행과 어려움이 있더라도 적폐 수사와 과거사 규명을 적당히 멈출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스로 권한을 줄이고 내려놓는 검찰 개혁의 필요성도 마찬가지다.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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