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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6.26 18:08 수정 : 2018.06.26 21:55

여현호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마누라 죽으면 뒷간에서 웃는다고 했던가. 고릿적 가부장제 때나 통할 속담이다. 요즘은 그런 상상만으로도 재앙이다. 하지만 지금 검찰엔 그런 속담이 속내와 맞을 것도 같다.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발표된 뒤의 모습은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검찰과 경찰의 소소한 다툼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조정안의 허점을 부각해 입법에 영향을 미치려는 여론전도 보인다. 그래도 겉으로는 조용하다. 특히, 검찰은 “이런 상황에서 ‘국민 밉상’ 검찰이 어떻게 개혁에 항거하겠느냐”고 한다. 불만이지만 참고 있다는 얘기다. 과연 그럴까.

검찰로선 지금 결과가 딱히 불만이 아닐 수 있다. 검찰개혁 논의 초기와 비교하면 득실이 확연하다. 애초 검찰개혁은 기소권·수사권·수사지휘권 등을 한손에 쥔 검찰 절대권력을 통제하고, 분산하고, 견제하자는 것이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검찰 직접수사 축소, 기소권과 수사권 분리,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의 과제는 하나같이 이를 겨냥했다. 그 초점은 정치권력과의 이해관계에 따라 숱하게 왜곡돼온 이른바 특수 사건에서 검찰권 남용을 차단하는 데 맞춰져 있었다.

지난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 담화 및 서명식을 마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오른쪽부터), 박상기 법무부 장관, 이낙연 국무총리,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서명을 마친 뒤 서명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금의 결과는 그런 출발점에 못 미친다. 정부 조정안이 입법으로 현실화한 뒤의 모습을 그려보면 피부로 느낄 만한 변화는 별반 없다. 검찰은 1~2년 뒤에도 여전히 특수부라는 전가의 보도를 휘두른다. 조정안은 부패범죄·경제범죄·금융증권범죄·공직자범죄·선거범죄 등 이른바 특수 사건은 여전히 검찰이 직접수사를 하도록 했다. 지금 그대로다. 검경이 같은 사건을 수사하면 검찰에 우선권이 주어지기도 한다.

국회에 제출된 공수처 설치 법안도 애초 구상보다 권한·위상·규모가 쪼그라들었다. 이대로라면 만만한, 검찰의 ‘작은집’이다. 검찰로선 이 역시 ‘선방’한 셈이다.

수사지휘권 등 경찰과의 관계도 ‘경찰의 완승’은 아니다. 검사가 ‘영감님’으로 대접받는 수직적 지휘관계 대신 상호 협력의 수평적 관계로 바뀌긴 했다. 하지만 일반 형사사건에서 뭐가 바뀌었는지 일반 국민이 실감하긴 쉽지 않다. 고소·고발은 검찰이 아니라 경찰로 가야 한다는 정도이겠다. 경찰에 1차 수사종결권이 주어졌다지만, 그 못지않게 검찰이 경찰 수사에 개입하고 통제할 수 있는 수단도 여럿 보강됐다. 검찰의 권한이 실질적으로 후퇴했다고 볼 만한 일도 그리 많지 않다. ‘명분은 경찰이, 실리는 검찰이 챙겼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지난 3월29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소희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한 검찰 관계자는 “왼발을 수술해야 한다고 해서 수술대에 올랐더니 오른발에 칼을 댄 꼴”이라고 했다. 말대로 기소권과 수사권의 완전 분리 대신 수사권 조정에 칼을 대긴 했지만, 근본적인 환부는 제거하지도 못했다. 검찰의 기득권은 대체로 그대로다.

일이 이렇게 된 이유를 따지기란 간단치 않다. 검찰의 적폐수사가 계속된 탓에 과도기적으로 어쩔 수 없었다는 설명도 있고, 문재인 정부의 개혁 자신감이 부족한 탓이라는 질타도 있다. 아쉽지만 검찰개혁의 첫발인 이번 조정안이나마 성사시켜야 한다는 다짐도 많다.

어떤 경우에도 본령을 잊을 순 없다. 검찰 절대권력의 해체를 내걸고 출발한 개혁이 길을 잃어선 곤란하다. 검찰과 경찰이 한 치의 권한도 놓지 않겠다고 다투거나, 누가 더 위험한 존재인지 비교하는 것이 논의의 대종을 차지하도록 둘 수는 없다. 그런 방해 탓에 개혁의 첫발이 국회에서 표류하는 일도 안 된다.

지금은 더 늦기 전에 본격적인 검찰개혁에 나설 수 있도록 힘을 추스를 때다. 이번이 마지막일 순 없기 때문이다.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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