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5.29 19:43
수정 : 2013.07.24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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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세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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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혼자 어디까지 가봤니
3년차 ‘야매’ 싱글녀 공세현씨가 삼십대 여자의 혼자 생존기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누군가는 성공 자서전 첫 문장에서 홀로 비행기를 타고 낯선 타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그 막막하지만 당찬 도전의 순간을 영광스럽게 회상할지 모른다. 그러나 서른둘, 혼자 사는 여자인 나는 혼자 곱창집에 들어가서 실컷 먹고 싶은 만큼 시켜먹고 온 날의 소회를 한동안 잊혀지지 않을 도전의 순간으로 기록하고 싶다.
첫번째 ‘나홀로 외식’은 야근 끝 귀갓길에 미치도록 먹고 싶었던 감자탕을 애써 24시간 해장국 한 그릇으로 대체한 날이었다. 아저씨들이 내 쪽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 같았고, 음식을 가져다주는 아줌마가 측은히 여기는 것 같기도 했지만 인생은 최면이야, 레드썬!
그러던 어느 날 꼭 집어 곱창이 당기는 날이 찾아왔다. 고소하고 풍미 좋은 곱과 기름에 잘 볶아진 무한 리필 부추! 혼자서는 먹을 수 없는 음식이라 생각하니까 갑자기 곱창은 구체적으로 내 마음을 지글지글 볶았다. 한번뿐인 인생, 내가 오늘, 그것도 지금 당장 너무 먹고 싶은 것을 못 먹고 참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 그날 나는 혼자 곱창을 구웠고, 그 이후로 서너 차례 더 나홀로 곱창 외식을 즐겼다.
이젠 제법 대범해졌지만 늘 “몇 분이세요?”라고 묻고 “혼자요?”라고 되묻는 식당 아주머니의 표정과 그 어투의 리추얼은 변함이 없다. 그 몇 초간의 야릇한 느낌을 견디는 것이 첫번째 관문이다. 가장 견디기 괴롭고 외로운 시퀀스는 바로 테이블에 앉아서 곱창이 구워지기를 기다리는 시간이다. 친구들에게 말도 걸어보고 웹툰도 뒤적뒤적하느라 스마트폰만 뚫어져라 들여다본다.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아, 당당하게 행동하라’고 마음속으로 외쳐본다. 하지만 실제로 옆 테이블에서 “어머, 저 여자 혼자 와서 곱창 먹는다”는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다. 여어, 날 그냥 임산부라고 생각해줘요.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않나요.
끝으로 아뿔싸, 밥을 볶을까 말까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밥 한 공기는 안 볶아주는 집도 있고, 밥까지 볶아 먹을 셈이냐 하고 짐짓 놀라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아주머니의 논버벌 랭귀지를 강한 정신력으로 애써 외면해야 한다. 옆 테이블에서 자작하게 볶아먹는 볶음밥 내음을 코끝으로 접하고 볶음밥 없이는 절대 이 만찬이 완성될 수 없다는 확신이 설 때 아주머니를 부른다.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첫 한 점의 그 황홀함, 그리고 마지막 한 톨까지 남에게 양보하지 않아도 되고 테이블 위의 모든 음식들이 오롯이 나만을 위한 것이란 사실은 이제까지의 이 모든 부정적 프로세스를 상쇄시킬 만큼 매력적이다. 난 이제 뭐든지 할 수 있는 여자고, 앞으로 홀로 곱창을 곱씹어 보지 않은 자와는 인생을 논하지 않으리. 하지만 한 번 간 곱창집을 두 번 방문해보진 못했다. 혹시 날 알아볼까봐.
공세현 씨제이(CJ)오쇼핑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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