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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1.20 20:49 수정 : 2013.11.21 14:22

[매거진 esc] 혼자 어디까지 가봤니

<섹스 앤 더 시티> 캐리.한겨레 자료 사진
이상하게도 11월만 되면 한번 살아보지도 않은 뉴욕이 그렇게 당긴다. 한가로운 늦가을 주말, 커피 한잔 들고 홀로 아파트 구석구석을 서성이며 서울 한복판에서 뉴요커 감성에 빠져든다. 주말부부지만 남편을 매주 만나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남편 없는 주말은 내게 ‘놀토’인 셈이다. 가끔 내가 너무 뻔한 아줌마가 되어가고 있다고 자각할 때 처방하는 <섹스 앤 더 시티> 다시보기 순례. 나는 자타공인 ‘캐리 키즈’. 친구들과 함께 나는 어떤 30대가 될 것인지 꿈꾸며 점쳐보고 언젠가는 꼭 이렇게 글을 써보겠다고 마음먹게 한 것도 바로 캐리 브래드쇼다.

혼자 사는 이야기를 쓰겠다고 했을 때, 쿨한 뉴욕의 언니들처럼 화려한 싱글 라이프를 뽐내는 줄 알고 배 아파 기절할 준비를 하고 있던 내 주변 지인들은 막상 연재가 시작되자 내게 무한한 동정표를 던졌다. ‘니가 그렇게 불쌍하게 서바이벌 하고 있을 줄이야… 혼자 밥 먹기 뭐하면 전화해 같이 먹어줄게.’ 연이은 자폭성 자학 고백에, 혼자 산다는 것은 정녕 고행 말고는 의미가 없는지 즐거움은 없는지 물어오는 후배들도 생기고, 남편은 내가 널 그토록 불행하게 하는 존재냐며 짐짓 내 눈치를 살폈다. 처음엔 그랬다. 잔뜩 기대에 부푼 결혼생활이지만 남편이라고는 매일 내 곁에 없고, 나는 이제 유부녀의 의무들로만 둘러싸여 사면초가라 느꼈다. 하지만 사실 너무 맛있어서 아껴 먹는 무엇처럼, 혼자 사는 즐거움은 너무 자랑하면 안 될까봐 쉬쉬해왔다. 미스들에게는 결혼이라는 관문을 통과했다는 것만으로 일종의 세이프티 존에서 거드름을 피울 수 있고, 기혼자들에게는 아직도 프리한 홀로 라이프를 영위한다는 이유로 부러움을 사고 있는 나는 체리피커. 주말부부란 3대가 덕을 쌓아야지만 가능하다고 하지 않나.

<나 혼자 산다>에서는 컵 없이 병에 입을 대고 물을 마시는 것을 혼자 사는 소소한 특권으로 꼽는다. 내게 있어 혼자임을 즐기는 의식적인 행위 중 으뜸은 알몸으로 집을 활보하는 일이다. 여자가 남자보다 정리정돈을 잘해야 할 것만 같은 강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이 피곤하면 양말도 속옷도 바지도 홀라당 허물 벗듯 내팽개쳐 놓고 잘 수도 있다. 매일 아침저녁 샤워하는 남편과 달리 살짝 안 씻고 잘 때도 있다. 당연히 채널 선택권도 메뉴 선택권도 모두 온전히 내게 있다. 하지만 그렇게 자유를 넘어선 방종의 세월을 보내고 나면 자연스럽게 나만의 규칙이 생기고, 질서를 확립해나가게 되더라. 집안 청소와 설거지의 카타르시스도 알게 되었다. 그 과정에 어떠한 타인의 개입은 없었다. 그저 내 라이프스타일을 찾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 수많은 관계들 속에 살아가지만 그중에 가장 중요한 관계는 나 자신과의 관계다”라는 <섹스 앤 더 시티> 시즌6의 마지막 명대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나는 나와 친해지고 남이 아닌 바로 나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나갔다. 그 시간을 보내고 난 뒤의 현재의 내가, 내가 누렸던 자유보다도 더 제법 마음에 든다.

바로 이번 주말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남편과 함께 월동준비를 하며 보냈다. 창문마다 함께 단열 필름을 붙이고 방한의 목적으로 커튼을 설치하는 과정은 절대로 혼자 해낼 수 없는 작업들이었다. 남편을 사랑하지만 그래도 월요일 아침이 되자, 은근슬쩍 웃음이 났다. ‘아싸, 이제부터 다시 나만의 시간이야!’ 이런 내 모습은 결코 내가 꿈꾸던 미래의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다시 만난 영화 속 유부녀 캐리 브래드쇼 역시 〈I DO, DO I?〉라는 책을 내고도 깨닫지 못했던 결혼 이후의 여정에 대해 정해진 정답은 없고 자신만의 방법들을 찾아 살면 그뿐이라고 이야기해준다.
<육아 앤 더 시티>나 <사표 앤 더 시티>가 속편으로 또 굳이 나오지 않더라도 이제는 롤모델을 찾아 헤매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는 어렴풋한 자신이 드는 대목이다. 그렇게 나는 신혼 2년을 보냈고 2013년도 저물어간다. 나는 아직 적응중이지만 예전처럼 초조하진 않다. 나는 잘하고 있다.

공세현 씨제이(CJ)오쇼핑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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