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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5.29 19:38 수정 : 2013.07.24 10:08

일러스트레이션 박지훈

[매거진 esc] 박지훈의 서바이벌 대작전

‘서바이벌리스트’ 박지훈씨가 극한상황 위기탈출 생존비법을 격주로 알려드립니다.

어느날 문득, 불안에 휩싸였다. 고향 살 적엔 좀체 보지 못했던 풍경인 길에서 입고 먹고 자는 사람들을 보며 초거대도시의 적나라한 적자생존에 겁먹었던 건지도. 까닭 모를 공포에 쫓겨 살아남음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호모 하빌리스(도구를 만들어 쓴 최초의 인간), 사람은 궁지에 몰리면 연장을 찾게 마련이니 남대문 도깨비시장과 을지로 공구상가 그리고 황학동 벼룩시장 일대를 헤맸다.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에 나를 구해줄 물건이 어딘가에 분명 있을 것이야. “너는 순하게 생겼으니까 서울 가면 조심해야 한다.” 네, 엄마.

서바이벌 그럼 무조건 나이프! 과연 그럴까? 여기는 도시다. 에너지는 질서에서 무질서로 이동한다는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자연은 만물을 해체하고 분해한다. 그런 자연에 맞서 인간은 가공하고 조립하고 유지하려는 끝없는 노력 끝에 마침내 도시라는 거대한 괴물도 만들어 냈고. 재난이란 인간이 억지로 누르고 있던 자연의 엔트로피 야성이 어느 순간 이빨 드러내 울부짖는 포효. 서바이벌이란 내가 처한 환경의 작용에 대응하는 나의 반작용이니, 자연에서의 서바이벌은 해체의 반작용인 가공이고 도시에서의 서바이벌은 가공의 반작용인 해체. 따라서 자연에서는 만드는 도구인 나이프가 마땅히 중요한 물건이고, 도시에서는? 빠개고 짜개고 비틀고 부수고 뽑고 쪼개는 도구가 중요하겠지.

도시 서바이벌 상황을 상상해 보면 십중팔구 어딘가에 갇혔을 때 어떻게 통로를 개척해 빠져나오는가, 즉 탈출이다. 어떤 곳에 갇혔다는 건 대개 마음속에 갇혔다는 뜻, 공간을 보다 입체적으로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시스템은 대개 견고하다. 그러나 부술 수 없는 것은 또 아니다. 무슨 말인가? 예를 들어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방에 갇혔다고 치자. 어떻게든 탈출해야 하고. 벽은 소재에 따라 콘크리트벽, 벽돌 쌓은 조적벽, 목재벽, 석고 등 혼합소재 모듈 짜 맞춘 조립벽 등이 있는데, 콘크리트벽을 제하면 나머지 벽들은 의외로 간단히 부술 수 있다. 인간의 힘으로 그게 가능해? 역시 호모 하빌리스, 지렛대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표준어로는 배척, 속칭 ‘빠루’가 그래서 요긴한 물건. 벽이 콘크리트라면? 문을 부수면 된다. 뉴스에 종종 등장하는 ‘빠루도둑’이 반면교사. 그자들은 어떤 문이든 20초 만에 딴다. 아무리 튼튼한 문짝을 달아도 막을 수 없다. 두 조각 맞물려 지렛대 고정을 방해하는 2중 문틀로 바꾸면 거의 막을 수 있고, 문짝 내부 철봉이 문틀을 지나 벽체까지 이어져 고정되는 특수 방범문이라야만 완전히 막을 수 있다.

못 뽑고 벽 부수고 문 따고 무거운 물건 들어 올리는 등 그야말로 만능 연장, 그 놀라운 도구적 효용성 덕분에 국회 공성전 현장에서도 종종 목격되는 빠루. 어떤 유명한 이론물리학자는 빠루 하나만 들고 탱크를 때려잡았다고도 하고. 그러니 도시인들이여, 집과 사무실에 1m 한 자루씩, 가방 안에 30㎝ 항시 휴대, 언제 어디서나 빠루를 가까이에 두자. 빠루 자루를 쥔다. 야무지니 든든하면서도 어째 마음이 뒤숭숭 알싸해진다. 몸과 도구의 야릇한 작용. 역시 마음이란 마음만으로는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건가 보다. 막연한 불안의 징조는 시나브로 누그러지고 생각은 초롱초롱 또렷해진다. 그래, 공간을 보다 입체적으로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계시. 내게 있어 빠루의 가장 큰 쓸모.

박지훈 소프트웨어 디자이너zeensai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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