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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6.12 19:29 수정 : 2013.07.24 10:09

일러스트레이션 박지훈

[매거진 esc] 박지훈의 서바이벌 대작전

약한 이빨과 발톱을 가졌음에도 식탐 많은 포식자인 인간은 사나운 짐승들과 경쟁하며 살아남기 위해 도구 사용과 의사소통 능력을 발달시켜 왔다. 재난이란 그 두 가지 형편이 여의치 못한 상황이고, 서바이벌이란 그 두 가지 능력의 회복을 뜻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든 칼이 있는 경우의 생존율은 없는 경우에 비해 3배 이상 높다.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스스로 생명과 자유 그리고 재산을 지키는 무기일뿐더러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의 확보와 가공에 매우 요긴한 연장이니, 당신은 칼날이 날카로운 만큼만 날카로울 수 있다.

칼로 나무 잘라 피신처 만들고 덫 놓아 동물 사냥해 가죽 벗겨 옷 만들고 부싯깃 만들어 불 피우고 요리한다. 어떤 시커멓고 긴 칼은 도끼처럼 두꺼운 칼등이 톱인데다가 손잡이에 나침반도 달려 있고 나사 풀면 안에 바늘과 실, 성냥과 설사약도 들어 있다. 멋있다! 그러나 서바이벌의 첫 글자 S는 ‘시추에이션’(Situation)의 에스(S), 즉 상황을 파악하라는 뜻. 대도시 한복판에서 동물 가죽 벗기고 부싯돌로 불붙여 요리해? 구속 조치가 불가피하다. 게다가 흔한 오해와는 달리 도검 소지 허가는 칼을 아무 데나 막 들고 다녀도 된다는 무슨 ‘007 라이선스 투 킬’ 같은 게 아니라 그저 구입 및 보관에 대한 허가일 뿐.

법과 제도가 그러하니 칼 즐기는 사람들은 어째 좀 부끄럽다. 나이프 동호회 모임에 갔다. 양산박 녹림호걸처럼 풍채 장대하고 기개 웅장한 거친 사내들이 됫박술 권커니 잣거니 껄껄껄 호방하게 웃고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웬걸, 모기만한 목소리로 “전 캐러멜마키아토요.” 주문하는 저 훅 불면 날아갈세라 왜소한 생물학적 수컷이 이 패거리의 두목이라네. 그리고 다들 융으로 스무 겹쯤 친친 감은 칼을 조심조심 꺼내 놓는다. 완전범죄를 노리는 건가, 칼날에 지문 하나 없다. 참 잘생긴 부세 나이프를 가리키며 “만져 봐도 됩니까?” 물었더니 그 핼쑥한 사내의 파리한 손이 부르르 떨리는 걸 나는 보았네. “저기, 장갑을 끼고 만져 주세요.” 아, 여긴 칼을 받들어 모시는 종교 단체, 서바이벌리스트가 섞일 만한 곳이 아니구나.

만년필이든 카메라든 자동차든 칼이든, 도구를 섬기는 자들이 뜻밖에도 꽤 많더라마는 어떤 도구든 제대로 써야만 진정 값진 법. 이로 음식물을 씹어 먹는 장면을 그려 보자. 앞니로 자르고 혀로 밀어 송곳니로 보내 갈기갈기 찢고 어금니로 부수고 짓이기며 볼 수축해 침 섞어 반죽 상태로 만들어 목구멍으로 넘긴다. 수많은 근육과 뼈와 관절이 긴밀히 협동하며 움직이는 매우 복잡다단한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모름지기 도구의 사용도 그 정도로 익숙해야 한다. 아니면 어쩌다 볼살 씹듯 내가 다치니. 웹 검색 엔진 통해 ‘트라이 스틱’(try stick)을 찾아보자. 가늘고 기다란 나무 막대기를 가로세로 모로 썰고 베고 쪼고 깎아 다양한 모양의 홈을 새기면서 칼의 쓸모를 몸으로 익힌다. 처음엔 아주 무른 발사나무부터 시작해 오동나무·삼나무·참나무 등 점점 더 단단한 나무로, 미끈하고 곧은 나무에서 옹이 박히고 굽은 나무까지. 천 번의 연습을 ‘단’이라 하고 만 번의 훈련을 ‘련’이라 하니 단련이란 즉 천만 번의 반복, 부단한 연습과 훈련을 통해서만 손에 설어 어색한 도구를 이나 혀처럼 자연스럽게 다룰 수 있다. 그 과정을 통해 저절로 깨닫게 되니, 흔히 듣는 “어떤 칼이 좋은 칼이에요?” 질문도 애초에 무의미해진다.

박지훈 소프트웨어 디자이너zeensai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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