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7.24 19:34
수정 : 2013.07.25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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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박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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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박지훈의 서바이벌 대작전
생존의 전도사를 자칭하니 친구들이 묻길, 도대체 얼마나 긴박한 상황을 상상하는 거냐? “글쎄, 인간의 멸종?” 답하니까 심각하게 나의 정신 건강을 걱정하더라만, 안심하게 친구여, 멸종은 뜻밖에도 매우 흔히 벌어지는 일이라네.
지금껏 지구에 존재했던 생명체 99.9%가 멸종했다. 생존에 불리한 조건을 자초하는 불량 유전자 때문이든, 운석 충돌이나 지각 변동 등 천운이 나빴기 때문이든, 절대다수는 나타났다가 곧 사라졌다. 6번째 ‘대멸종’이 1세기 이내로 임박했다는 주장은 언뜻 에스에프(SF)적 상상으로 보일 정도로 과격하지만, 제시된 자료나 속속 드러나는 온갖 징후 너무나 뚜렷하니 아무도 이견을 내밀지 못한다. 75% 이상의 종이 사라지리라 예상되는 금세기 대멸종,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꽤 오래 버틴 베테랑, 소위 ‘살아있는 화석’을 보면 우리도 그렇게 오래오래 살 수 있으려니 그저 믿고 싶다. 하지만 우리는 애초에 완벽하게 타고난 상어처럼 압도적으로 강하지도 않고, “편식은 나쁜 버릇이죠. 저희는 음식을 가리지 않습니다.” 제아무리 무던한 식성 자랑하는 잡식성 포식자라도 입에 대고 싶어하지 않는 바퀴처럼 압도적으로 더럽지도 않다.
지금도 매 시간 3종의 생물이 멸종하고 있다. 적자생존 교리는 공정하고 효율적인 룰이 존재하는 게임이라는 함의를 품고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과거와 달리 현재의 멸종은 대개 인간의 직간접적 영향이 그 원인이니 더욱 부당하다. 요즘은 살아남으려면 일단 예뻐야 한다. “멸종 위기!” 요란한 동물들은 모두 다 투실투실 귀엽게 생겼지. 그래야 돈이 모이니까. 조직 활동에는 돈이 들게 마련이고 모금으로 유지하는 조직이라면 홍보 효과 노릴 수밖에 없으니, 예쁜 선수 우승하게 함으로써 침체에서 벗어나겠다며 편파 판정 서슴없이 저지르는 아무개 스포츠 협회처럼, 판다와 고래는 특별 대우 받고 있다. 세계자연보호기금(WWF)이 판다를 마스코트로 내세운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 실제 개체 수가 통계보다 훨씬 더 많고 심지어 증가 추세라는 건 더는 비밀도 아니지만,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안 예쁜 것들이 무관심 속에 영원히 사라지고 있지만, 그런 불공정과 비효율은 중요하지 않다. 판다가 귀엽다는 게 중요하지. 그럼 인간은 누구의 눈에 예쁘고 귀엽게 보여야 할까? 글쎄, 가이아? 카이주(괴수)? 거인?
멸종의 공포도 생존의 희망도 모두 다 인간이 세계의 중심일뿐더러 궁극적 목적이라고까지 믿는 인간중심주의 틀에 갇혀 있다. “인간 멸종? 지구가 망한다는 거야?” 맙소사, 이 오만과 편견은 도대체. 과거 수차례 대멸종을 겪고도 지구는 지금껏 안녕하다. 완전 안녕하다. 불행히도 멸종을 피할 수 없다 하더라도 기껏해야 다른 종으로 대체되는 게 고작이겠지. 부디 우리보다 현명한 종이길. 수천만년 지나면 ‘그들’도 불완전한 화석 자료와 표피 슬쩍 긁는 수준의 지질학 연구를 통해 추론하겠지, 과거에 잠깐 흥했던 ‘인간’이라는 현상은 왜 소멸되었나. 그때, 조금은 덜 어리석은 존재로 해석되길 바란다. 그래야만 지금 생존 확률도 조금은 높아질 테니까. 지금 우리가 뭐든 어떻게든 잘만 하면 총체적 위기를 막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 문명은 멸망한다손 치더라도 인류는 어쩌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몰라, 끝내 포기하지 않고.
박지훈 소프트웨어 디자이너
zeensai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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