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8.21 19:29
수정 : 2013.08.22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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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박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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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박지훈의 서바이벌 대작전
모든 일을 전술적으로 처리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다. 길 걸을 때도 지하철 기다릴 때도 밥 먹을 때도 잠잘 때도, 이른바 ‘생활 택티컬’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들. 물건을 살 때도 전술적인, 즉 택티컬한 물건만 고른다. 택티컬한 물건? 장기간 관찰해본 결과, 색깔 검고 찍찍 붙였다 뗐다 할 수 있는 벨크로와 길이 조절 가능하고 규격화된 끈 그리고 주머니가 여기저기 많이 달렸는데 똑같이 생긴 ‘일반’ 물건보다 딱 두 배 비싼 물건을 ‘택티컬’로 분류하나 보더라. 가치 따지면 곤란하다. 그들에게 전술성은 심미적 기준일뿐더러 나아가 삶의 지표니까. 심각한 운동부족이라 어떤 장비로 중무장하든 애초에 몸이 비전술적인 자도 있더라는 지적도 금기. 물건 고르고 사고 잠깐 기뻐하는 간편한 재미를 꼬치꼬치 따지기 시작하면 현대 소비사회 살아가기 참 피곤해지니 지적질은 서로 피하는 게 예의이자 암묵적 합의. “취향입니다. 존중해 주시죠?” 어째 좀 딱하다 싶기도 하지만 그 기준이 ‘패션’이나 ‘트렌드’인 경우에 비하면 대체로 쓰기 편하고 튼튼한 물건이라는 장점만큼은 확실하고.
생활 택티컬 중증인 어떤 친구는 비 오는 날 우산 꺼내기만 하면 꼭 시비다. “아니, 서바이벌 하시겠다는 분이 어디서 우산질이세요?” 아니 왜? 우의에 비해 방수성 낮지만 사방 개방되어 환기성 뛰어나 습기 차지 않는 매우 훌륭한 우천장비인데? 비전술적 물건 취급, 억울하다. 가랑비에 잠깐 외출하는데 판초 뒤집어쓰라고? 사태 발발 시 타프로 쓸 수 있어 ‘택티컬’ 분류 가능하다는 이유로 그 덥고 습한 걸? 이는 아마도 수많은 오해와 억지와 음모의 진원지 군대 영향인 듯싶다. 우산 사용은 입수 보행, 실외 탈모와 더불어 군인의 절대적 금기라고들 하지만, 정작 부대관리 훈령에는 ‘군인은 군인으로서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색상의 우산을 사용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우산은 여러모로 쓸모 많은 물건이다. 양쪽 뚫린 소형 천막에 몸 숨길 때나 불 피울 때 훌륭한 바람막이가 된다. 꼭지의 나사 규격이 카메라의 그것과 일치하니 삼각대 대신 쓸 수 있고, 특별한 용기가 필요하긴 하나 양산으로도 쓸 수 있다. 절대 금물이지만, 낙하산처럼 펼쳐 10층 높이에서 뛰어내려 탈출에 성공한 사례도 있고 끝에 독침을 달아 암살도구로 썼던 기록도 있다. 영국 여행작가 조지 버로 왈, “강도들이여, 신사에게 덤비더라도 신사의 가장 좋은 친구 우산은 결코 빼앗을 수 없을 것입니다.” 웬만큼 사나운 짐승도 눈앞에서 우산 탁 펼치면 자기보다 덩치 큰 적으로 착각해 달아난다. 특히 멧돼지 상대로 효과적이라서 자동우산은 산길 다니는 스님들의 필수품. 무기술 전통의 부실은 아쉽지만, ‘칼리’ 단봉술과 ‘바팃수’ 그리고 ‘케인푸’ 등 지팡이 무술을 가르치는 동영상은 흔하니 쉽게 배울 수 있다. 손에 걸리니 적에게 뺏기지 않고 목이나 발목에 걸어 제압할 수 있는 갈고리 손잡이가 유리하다.
호신술의 필요 점점 커져가는 흉흉한 사회, 늘 우산을 휴대하자. 철제 살에 실로 묶어 만들어 수리 간편하고 튼튼한 구식 우산. 한국의 봄과 가을은 날씨 불안정하고 여름에는 장마와 태풍 잦으니 본래 목적만으로도 휴대의 보람 꽤 높은 확률로 느끼게 될 터, 품위 있는 색상의 우산은 충분히 택티컬한 물건이니 마음껏 우산질하자.
박지훈 소프트웨어 디자이너
zeensai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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