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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0.23 19:38 수정 : 2013.10.23 19:38

일러스트레이션 박지훈

[매거진 esc] 박지훈의 서바이벌 대작전

‘호루라기는 너무 소극적’이라는 지적에, 보다 적극적인 호신술을. 타격의 이론은 간단하다. 충격은 질량과 속도에 비례하고 충격이 작용한 시간에 반비례하므로 짧게 끊되 무게 실어 빠르고 정확하게, 때린다. 주먹질이라면 단단히 버틴 다리로부터 허리 지나며 회전하고 어깨를 통과한 힘이 손실 없이 팔로 뻗어 정확한 지점을 가격, 실천도 간단한가?

인간 몸 여러 부위 중 무기로서 가장 쓸 만한 것은? 우선 폭력의 상징이자 반항의 상징, 주먹. 근데 주먹을 제대로 쓰기란 그리 만만치 않다. 뼈나 이빨 잘못 때리면 손뼈 깨지거나 살 찢어지기 십상, 전문가도 예외 아니라 권투선수 등 주먹질의 전문가일수록 주먹을 아낀다. 손가락 2관절과 3관절 사이 ‘너클’ 단련해 돌주먹을 만든다 한들 새끼손가락 중수골 골절, 소위 ‘복서 골절’은 매우 흔한 부상. 손뼈 27개, 하나라도 깨지면 그 주먹은 못 쓴다. 투혼으로 극복? 물론 그런 자도 있겠지만 아마도 그는 이미 인간 흉기일 테고. 그러니 콘크리트 벽을 친다면 뭐로 칠지 생각해 본다. 주먹 쥐고 새끼손가락 뿌리께로 내리치는 주먹망치는 훌륭한 무기, 주먹 못잖게 강할뿐더러 두툼하고 질긴 살로 덮여 있고 손목 꺾인 채 때려 다칠 위험도 없다. 그리고 손바닥, 뜻밖에 매우 강하다. 턱 쳐올리고 그대로 손가락으로 눈 찌르기로 연결할 수 있다. 그리고 팔뚝, 단단한 팔뼈 휘둘러 큰 충격 가할 수 있고 타점을 정확히 때려야 하는 주먹에 비해 범위가 넓어 흐트러진 자세에서도 공격이 가능하다. 팔꿈치, 거리가 짧긴 하나 빠르고 강한 공격이 가능하고 반대 손으로 밀어 버팀으로써 몸통 회전력을 더할 수 있다. 이빨로 물기, 끔찍한 고통뿐 아니라 범죄자의 몸에 완벽한 증거를 남길 수 있다. 웬만큼 훈련하지 않았다면 발은 공격보다 중심 잡는 데 집중한다. 발과 몸의 조화, 스텝 꼬이면 모든 게 끝이니. 꼭 차야겠다면 예비 동작 없이 짧게 차고 즉시 뺀다. 무릎은 강하지만 실제로 움직여 보면 좀처럼 동선이 나오지 않고, 눈으로 볼 수 없는 곳을 차야 하니 공격점 확인하려고 내려다보게 되니 적에게 방어점을 미리 알려 주는 꼴.

역도산은 김일에게 “너는 조선인이니까 박치기를 해야지”라고 말했다. 빠르고 정확하게 무게 실어 딱 때리기 좋은 박치기, 살벌하다. 특히 위기에 강하다. 멱살 잡히면 깍지 낀 두 손으로 팔꿈치 찍어 누르며 이마로 딱, 뒤에서 껴안으면 고개 앞으로 숙였다가 확 젖히며 뒤통수로 딱, 코를 노린다. 동선 짧아 연타 용이하고 충격 크니 “이것 봐! 이러면 손이 올라오게 되어 있어!” 상대가 손으로 막는 순간 또 박아 손뼈 부수고 무장해제. 근데 내게도 위험하니 뇌진탕과 두개골 골절뿐 아니라 뇌신경 다치면 기억장애 그리고 언어장애 위험까지. 당장은 괜찮다 싶더라도 펀치 드렁크는 평생을 따라다니다 파킨슨병이나 치매로 이어지기도. 김일의 쓸쓸한 말로를 보라. 그러니 박치기는 전통적으로 약자의 무기, 오늘을 살아갈 뿐 내일을 걱정할 겨를 없는 자의 최종 기술. 초라해 보이는 잠수함이 어마어마한 항공모함을 제치고 전략병기 1위를 차지하는 까닭은 본토 점령당해 국가가 아예 사라진 상황에서도 적국 수도에 심각한 타격을 가할 수 있기 때문.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각오로, 박는다. 자, 간단해 보입니까? 괜히 호루라기 권하는 게 아니라니깐요.

박지훈 소프트웨어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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