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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2.04 20:09 수정 : 2013.12.05 11:57

일러스트레이션 박지훈

[매거진 esc] 박지훈의 ‘서바이벌 대작전’

“탈출 배낭이 뭔가요?” 위기 닥치면 즉시 들고 튀는 배낭입니다. “예를 들어?” 영화 <솔트>에서 앤절리나 졸리가 추격대 피해 달아나다가 잠깐 집에 들러 잽싸게 꺼내 메고 달리는 검은 배낭, 그 장면 멋져요. “어떤 배낭이 탈출용으로 적당할까요?” 글쎄요. 집에 둘 건지 일터에 둘 건지 차에 둘 건지 늘 휴대할 건지 등 경우에 따라 크기와 모양 그리고 내용물이 다르겠죠. “뭘 넣어 둬야 하나요?”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기본 생존 도구 말고는, 역시 형편을 따릅니다. 가장 큰 변수는 탈출 경로의 지리와 길이 그리고 소요 시간, 따라서 탈출 배낭과 성질 비슷한 작전 배낭은 아예 한나절·하루·하루반·이틀·나흘 식으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흔히 72시간을 기준 삼구요. 내용물도 제각각인데, 솔트는 스파이니까 배낭 안에 총과 폭탄 그리고 독침이 들어 있었죠. “어떤 배낭이 좋은 배낭인가요?”

어떤 배낭이 좋은 배낭인가? 짐을 넣어 메고 이동하기 위한 도구니까 몸에 잘 맞아 편하게 짐을 나를 수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하고, 걷다가 하루나 이틀쯤 한데서 자야 하는 상황이라 치고, 80리터. 골라 보자. 주머니 개수와 위치, 내부 구획 분할과 개폐 방법 등 설계 괜찮은지 살피고 개중 튼튼해 보이는 걸 집어 안에 이것저것 막 채워 부피와 무게 적당히 맞추고 끈 다 풀어 헐겁게 한다. 골반 높이에 맞춘 허리끈만으로 배낭 전체를 지탱하게끔 바싹 죈다. 어깨끈은 거들 뿐! 아, 아프다. 그러니 완충재 재질과 두께가 중요해, 두꺼울수록 좋지만 그만큼 둔하니 적당히 절충. 체온과 땀에 반응해 몸에 맞춰 변형된 형상을 기억하는 소재도 멋진데, 비싸다. 근데 좋은 배낭은 대개 비싸니 적당히 타협. 그리고, 어깨끈 당겨 고정한다. 골반에서 경추까지가 등판 길이 기준이지만 배낭 생김새에 따라 느낌 다르니 메고 이리저리 끄떡끄떡 움직여 보고 조절한다. 제대로 만든 배낭이라면 등판은 판판하지 않고 등 모양 따라 둥글게 말려 있고 허리끈은 수평이 아니라 살짝 위로 치켜든 각도일 것이다. 그래야 몸에 맞는다. 그 상태로 양손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지, 지면 고르지 않아 발 헛디뎌 삐끗했을 때 몸 전체 균형 잃지 않는지 등 꼼꼼히 살핀다. 편하다면 그 배낭은 꽤 쓸 만한 배낭이다. 그러나 완벽한 배낭은 아니다.

완벽한 배낭을 찾아서, 10년 넘게 방황했으나 아직도 찾지 못했다. 세상에 쓸 만한 배낭은 흔하지만 ‘배낭을 입고 먹고 잔다’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해. 내가 메고 싶은 배낭을 아무도 만들어 주지 않으니, 직접 만들어야 하나? 늘 고민한다. 설계도도 수십장. 다행히도 외로운 취미는 아니다. 동지가 제법 많다. 몸에 가까운 물건일수록 생각 복잡하니 대화도 치열. 길이 거칠고 거치적거리는 게 많다는 이유로 온통 프레임 내장형 배낭 천지라 저만치 구석으로 내몰린 외장형 팬들의 울분에 특히 공감, 노출된 프레임에 뭐든 매달 수 있어서 좋은데 말이야. 비 오면 배낭 덮어씌우는 덮개 말고 물건 담아 배낭 안에 넣는 방수 주머니 애호가들의 하소연도 마찬가지, 비에 젖지 않아야 할 건 배낭이 아니라 짐이라구 짐! 이러다 보면 언젠가는 완벽한 배낭에 닿을 수 있겠지. “어떤 배낭이 좋은 배낭인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근데 배낭, 생각만 해도 이미 충분히 기분 좋지 않나요?

박지훈 일러스트레이션 박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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