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2.18 19:50
수정 : 2013.12.19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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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박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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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박지훈의 ‘서바이벌 대작전’
“내가 사설 민방위 훈련소 차릴까? 엉?”
웬만하면 나랏일은 비싼 녹 먹는 나라님들이 어련히 알아서들 잘하시겠거니 멀찍이 지켜보려 애쓴다. 납세자로서 만족도는 조세 형평성으로 보나 세금 씀씀이 꼴로 보나 완전 밑바닥이지만 이게 결국 우리네 수준이려니 자포자기도 약간. 세월 하 수상해 낙관 불가한 시절이나 그래도 인내는 나 나름의 애국이라며 어금니 꽉 깨문다. 사실 밥벌이 개인사 하도 빡빡해 세상사 두루 둘러볼 마음 여유도 없다. 허나 그런 나조차 빡 신경 긁힌 사건 둘 있었으니 서로 무관한 듯하나 은근슬쩍 겹치는 건, 소방방재청 불만.
부산 어떤 아파트에 불이 나 서른넷 주부와 어린 삼남매가 화마에 휩쓸렸다. 언론은 아이들 지키느라 품에 안은 채 타 죽은 모정 칭송하더라만 그까짓 말이 무슨 소용, 홀로 남은 아비 마음 생각하니 하늘이 무너지는 듯하다. 안타깝게도, 정말 안타깝게도 시신이 발견된 발코니에는 탈출벽이 있었다. 공통주택 가구 간 경계벽에 피난구 설치하는 주택법은 임의규정이지만 시공 및 완공검사 등에 영향 미치니 1992년 개정 이후 지은 아파트 열 중 일곱에 탈출벽이 있다. 대개 1㎝ 미만 얇은 석고벽이라 특별한 도구 없이도 발로 차면 부서지니 벽 뚫고 옆집으로 피할 수 있다. 그 탈출벽 바로 아래서 세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소방방재청은 뒤늦게 ‘아파트 거주자들은 평소 대피시설 확인해 두라’ 홍보에 나섰다. 지금껏 뭐 하다가? 때늦은 사후약방문.
민방위대는 소방방재청 소속 민병 조직이다. 600만 대원들이 재난이나 전쟁 등 민방위 사태 발생 시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수 있도록 “투철한 사명감과 국가관을 확립하고 임무와 역할 수행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민방위 교육을 받는다. 이 국가주의 과잉을 어쩔꼬. 지식과 기술이 주, 사명감과 국가관은 한낱 부에 불과하거늘, 주와 부 뒤바뀌니 참말로 희한한 일이 벌어진다. 민방위 교육장 응급처치 강의 중 전직 대통령 추락사 가리켜 “응급처치 잘했더라도 죽었을 거”라며 떠들다가 뜬금없이 “5·16 군사혁명” 찬양 늘어놓은 안보강사 때문에 잠깐 요란했다. 안보강사라 불리는 자들 중 6할이 극우단체 소속이라며 다투던데, 애초에 응급처치 교육을 안보강사가 맡았다는 것부터 희한한 일. 세상 요즘 왜 이러나? 애국자 총동원령이라도 발동했나? 왜 너나없이 안보 타령인가? 응급처치 교육은 안 할 거야?
딱 걸리면 하나같이 자기는 그저 열심히 했을 뿐이라 우긴다. 미련타. 열심히 하지 말고 잘하라는 말도 이제 좀 지겹지. 아니, 잘하길 바라긴 너무 막막하니 맡은 바 자기 일이나 좀 해 주길 바랄 따름. 소방방재청의 ‘일’은 스스로 엄히 밝히는바 “특히 국민의 안전욕구에 부응하는 열정 있고 효율적인 재난관리”라니 그럼 그걸 해야지 왜 안 하고 엉뚱한 짓을 하나? 어이 아저씨, 거 왜 일하러 와서 쓸데없는 소리를 합니까? 자꾸 그러시면 ‘박지훈사설민방위훈련소’ 진짜로 차리는 수가 있어요. 민방위 교육 받다가 하도 답답해 차라리 내가 하겠다며 미리 땅도 사 뒀다. 터 좁아 합숙은 어렵겠지만 쿠데타 찬양하느라 시간 낭비 않으면 당일치기 코스로도 충분할 거라. 교통편 및 점심 제공, 남녀노소 필수품 ‘빠루’ 증정, 친절하게 모시겠습니다.
박지훈 소프트웨어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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