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2.05 19:58
수정 : 2014.02.06 09:55
[매거진 esc] 박지훈의 서바이벌 대작전
스마트 디바이스라는 문화 파시즘의 최신 무기, 급속한 기술화 그리고 세계화 속도에 적응하지 못해 낙오된 사람들의 불안심리를 노리는 배타적 전체주의가 복종을 강요한다.
요령부득인 기술의 첨단을 손에 딱 들어오는 크기로 압축한 상징물을 간단한 절차에다 거의 공짜로 소유함으로써 한층 높은 수준으로 일거에 대약진, 시대 흐름에 더는 뒤처지지 않고 직접 참여하는 듯한 착각에 도취되게 만드는 대안적 현대성. 이 깜찍한 내숭 덩어리의 가장 무서운 점은 자발적 착취 유발, 퇴근 뒤에도 때와 장소 가리지 않고 일하게 만든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이제 높으신 분들은 지금껏 그들의 무기였던 생산도구를 장만하지 않아도 된다. 가끔씩 “어라, 요즘도 그런 거 쓰는 사람이 있네?” 찔러주면 재깍재깍 새 기계로 바꿔 온다. 구입도 알아서 유지·보수도 알아서, 얼마나 편리한가. 게다가 생산성이 자랑이다. 놀랍지 않나. “이거 사니까 일을 이렇게나 빨리 끝냈어!” 동기부여 자가발전 부지런한 노동자, 참말로 희한한 일이다. 그 음흉함 때문에 난 아직도 스마트 어쩌고 하는 물건들을 사용하지 않는다. (거짓말, 배터리 기술이 충분히 발전하지 않아서 아직 살 만한 물건 아니라고 우기며 버틴다.)
게다가 이 물건, 굉장히 위험하다. 장시간 나쁜 자세로 사용하다 손가락과 손목 통증을 호소하고 일자목, 거북목 등 몸 곳곳이 고장 나는 환자가 많다. 요즘은 아예 ‘태블릿증후군’이라 부를 정도. 주의력이 일상 안전에 필요한 최소 수준 이하로 뚝 떨어져 크고 작은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교통사고 중 가장 빈번한 횡단보도 사고,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으로 인한 사고는 해마다 곱절로 늘고 있다. 평상시 인간 시야각은 120도 정도이지만 뭐든 보면서 걸으면 20도 이하로 줄어든다. 이어폰까지 끼면 사실상 자살 시도. 때문에 운전뿐 아니라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까지 법으로 금하고 벌금 부과하는 나라도 있다. 개인의 자유와 국가의 개입, 복잡한 문제다. 내가 그러고 다니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 다쳐도 내가 다치고 죽어도 내가 죽는데? 아니, 남까지 다치게 하니 상관있지. 많지. 재작년 봄 3명 숨지고 4명 다쳤던 상주시청 사이클 선수단 참사도 화물차 운전자가 운전 중 디엠비(DMB) 방송 보다가 일으킨 사고였다.
지금도 위험한데 입는 컴퓨터와 만물 인터넷 그리고 스마트 자동차 등 더 스마트한 것들까지 가세하면 이 문제 앞으로 훨씬 더 심각해질 것이다. 사람끼리 걷다 부딪쳐 다치는 사고도 흔하고 괜한 시비 붙어 싸움 벌어지는 일도 잦다. 잠깐 요란했던 ‘묻지마 슈퍼 폭행’ 건도 이어폰 낀 채 전화기 보며 무단 횡단하는 자를 차로 칠 뻔하고 놀란 운전자가 슈퍼로 따라 들어가 폭행한 사건이었다. 멋진 상황은 물론 아니었다만 소위 ‘묻지마 폭행’은 아니었던 것.
사고 위험뿐 아니라, 공포도. 부디 바라건대 가로등 없는 밤길 걸을 때만큼은 사용 자제해 주세요. 어두운 데서 그러고 다니면 컴컴한데 얼굴만 훤해 몸 없이 머리만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보여 식겁한단 말입니다. 게다가 그 귀신 머리, 실실 웃고 있어, 제발 좀.
박지훈 소프트웨어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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