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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3.26 19:39 수정 : 2014.03.27 14:24

일러스트레이션 박지훈

[매거진 esc] 박지훈의 서바이벌 대작전

생존 상황이란 편리가 사라진 환경. 우리 주변 온갖 문명의 이기들은 얼마나 편리한가. 도구마다 제각각 맡은 바 목적에 충실하게 진화된 꼴을 보면 절로 감탄이 터져 나온다. 어쩜 이리도 대견한지, 흐뭇하다. 못대가리 땅땅 내리치는 망치만 보더라도 사람 손목과 팔꿈치 그리고 어깨관절을 축으로 돌리며 내리치는 여러 원운동의 힘이 완벽하게 타격으로 이어지게끔 생겨먹은 설계 참 아름답다. 딱 적당한 모양과 무게중심, 우연이 아니다. 기원전 240만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긴 세월이 지금의 망치를 결정했다. 짐승의 가죽이나 힘줄로 막대를 묶어 자루 붙인 혁신도 기원전 3만년 전. 게다가 그 쓸모에 따라 길이, 무게, 재질, 모양 서로 다른 종류도 얼마나 다양한가. 재미로 각종 망치 모으다 그만 포기했을 정도. 괜히 노동자의 상징 된 게 아니다. 노동이라는 말의 거룩함은 망치의 계보와 계통만 슬쩍 훑어봐도 이미 충분히 증명되니까. ‘빠루’(라 쓰면 안 되고 ‘노루발못뽑이’라 하라는 지적 수차 받았지만 그래도, 빠루)는 또 어떤가. 빠루의 원리인 지렛대는 어떤 목적을 실현할 수 있게끔 돕는 수단과 힘의 비유로도 쓰인다. 내게 길이 적당한 빠루만 다오, 지구라도 움직여 보이겠다. 역시 지렛대 원리를 이용하는 뻰찌(라 쓰면 안 되고 ‘펜치’)도 참 멋지다. 하지만 이는 모두 고전 도구들의 이치.

좀체 이해할 수 없는 도구들이 있다. 최신 스마트폰의 작동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가? 마치 공기처럼 익숙한 웹은? 아니 컴퓨터를 이해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이렇듯 주변에 흔한 물건들의 이치가 어려워지니 에라 모르겠다! 포기. 사람의 공포는 두 눈이 앞을 향해 있어 뒤를 볼 수 없기 때문. 그러니 그 대상이 뭐든 존재의 뜻을 모르는 미지의 것과 마주치면 조마조마 불안해야 자연스러운 건데 이제 그런 물건 너무나 흔해 아무것도 모르는데도 불안하지 않아. “잘생겼는데, 그거 꼭 알아야 돼?” 고객님 신경 꺼 두셔도 좋습니다. 그치, 알 게 뭐야. 하지만 편리가 사라진 환경에 처하면 만물의 이치 몰이해는 곧 심각한 위험이다. 평소 도구 의존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더 위험하고. 도대체 이 소외를 어쩔꼬. 생존 상황이란 편리가 사라진, 그리고 목적과 수단의 관계가 파괴된 환경. 그리도 세련된 도구의 필연성 따위는 절대 보장받지 못하니 개별 분야의 특성과 고유함은 오히려 방해가 될 뿐. 환경의 예측불가능성에 따라 주변 사물을 목적 달성에 맞게끔 용도 변경하고 도구화하고 재조합해야 한다. 결국 우연과 직관에 따른 문제해결능력. 그러니 범용성 높고 간단한 기본 도구 하나 골라 늘 만져 손에 익히고 항상 휴대하는 게 좋다. 어떤 도구가 좋아? 글쎄, 대개 스위스 아미 나이프를 권하더라만 진짜로 가장 유용했던 건 뜻밖에도 작지만 야무진 공작 가위였고. 모양이야 뭐 어떻든, 쇠붙이. 날 선. 스마트하지 않은, 고전 도구.

“서바이벌리스트는 평소 어떤 훈련을 해야 하나요?” 네, 연장을 만지고 기계를 고치고 물건을 만드는 일에 익숙해지세요. 손가락 뿌리마다 박인 굳은살과 손톱 아래 기름때는 언제든 꼭 한 번은 큰 도움 될 겁니다.

박지훈 소프트웨어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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