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4.23 19:29
수정 : 2014.04.24 16:18
|
일러스트레이션 박지훈
|
[매거진 esc] 박지훈의 서바이벌 대작전
연재 시작할 때 주변에서 주제를 물었고 생존이라 답하니 다들 고개를 갸우뚱, “아니, 그런 걸 왜?” 그래, 바로 그런 무심함 때문이지. 이 나라에서 생존은 너무나 하찮다. 심각한 생존 위협 맞닥뜨려야 그제야 비로소 안전불감증 운운 뜨겁지만 그때 잠깐뿐 금세 식는 냄비, 이런 나라 또 없다. 생존은 곧 위기관리. 위기 발생 전 예방과 징후 발견 즉시 대피, 사고 후 초동 대응과 사후 복구 등 단계로 구분하고 단계마다 경보, 소개, 탐색구조, 응급의료 등 필수 기능이 따라붙는데, 필수라 함은 즉 필연이니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이후 모든 단계를 망친다. 가장 중요한 국가 시스템이요 애초에 국가라는 개념의 가장 막중한 존재 목적, 내 안전의 값으로 대신 군대와 경찰 등 폭력의 독점을 인정해 주는 일종의 계약이니 국민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요구다. 그런데도 제대로 돼먹은 게 하나도 없다. 늘 엉망이었으니 새삼스럽지만, 의심하는 사람들도 부쩍 늘었다. “국가가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는가?”
생존이 하찮은 건 목숨이 하찮기 때문. 구조 대상의 성분에 따라 구조 노력이 달라지는 나라는 몹쓸 나라다. 이해 간편하게 군을 예로 들어 보자. 한국군 중 가장 뛰어난 탐색구조 부대는 공군의 항공구조대(SART). 육해공 어떤 환경에서도 즉각 적진에 투입되어 조난자를 구출해 안전지역으로 귀환한다. 여러 특수부대 중에서도 가장 지독하게 훈련한다. 왜? 구조 대상이 비싸니까. 조종사 육성에 워낙 많은 돈이 들고 보유 정보가 고급이라 전력 가치가 높기 때문. 그럼 일반 사병을 잃었을 때 구조 노력은? 너무 컴컴하고 쓸쓸한 이야기니 차마 길게 말하지 못하겠고, 다른 나라를 보자. ‘단 한 명도 남겨 두지 않고 모두 데리고 온다’는 선언을 지키기 위해 미군이 투자하는 비용을 보면 그 나라가 국민의 가치를 얼마나 높게 평가하는지를 알 수 있다. 세월호 재난 관련 발언들 중 가장 서글펐던 건 “서울 강남 학생들이었다면 저들이 저렇게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노였다. 지나친 억지라고 따질 수는 있겠으나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옥 같았던 지난 며칠, 분노의 조건은 차고 넘쳤다. 개중 가장 화났던 건 배 버리고 달아난 선장도 중대본이라 쓰고 쪽대본이라 읽는 본부도 무능한 정부도 한심한 언론도 대통령도 아닌 어떤 해양전문가 참칭하는 자의 발언이었다. “정서 불안정한 학생들이라 선장 지휘에 따르지 않고 우왕좌왕하다가 탈출에 실패한 것 같다.” 사고 직후니 정황 파악 미처 못했다 치더라도 고리타분한 꼰대 발상 참 가증스럽더라. 이윽고, 아, 보라! ‘대피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끔찍할 정도로 무책임한 지시를 곧이곧대로 믿어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아이들을. 그리고, 꽃이 진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제, 과학, 기술, 예술 등 여러 분야에서 제각각 아름답게 피어오를 미래가 진다. 치가 떨리고 피가 거꾸로 솟는다. 착한 아이들아, 가만히 있지 마라. 어른 말 듣지 마라. 달아나라. 가만히 있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그런 나라다. 우리 비루한 어른들은 너희들과 대화도 못 나눌 만치 미친 듯 바삐 허겁지겁 살더니만 고작 이런 나라를 만들었구나.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박지훈 소프트웨어 디자이너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