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5.07 19:36
수정 : 2014.05.08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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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박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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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박지훈의 서바이벌 대작전
어떤 지체 높으신 분께서 홀로 터벅터벅 몇 걸음 걷다 말고 썼다는 ‘갑작스러운 사고’라는 말이 참 갑작스럽다. 갑작스러운 사고, 세상에 그런 건 없다. 모든 사고는 비슷한 사고들이 반복해 발생하되 그 규모는 점점 더 커져 가는 나선형 악순환의 연속선 위에서 일어난다. 그러니 작은 사고는 큰 사고의 위험을 알리는 조짐으로 볼 수 있고, 다시 말해 큰 사고는 작은 사고의 경고를 무시한 탓에 벌어지는 것. 하지만 대개 큰일 벌어지고 나서야 ‘아, 그때 그게 징후였구나’ 깨닫고 뒤늦게 외양간 고치자며 야단이다. 도대체 왜 그럴까? 허튼 욕심이 눈을 가리기 때문.
어느 날 자전거 타다 보니 몸통 뼈대에 가느다란 실금이 눈에 띄네. 이건 고칠 수도 없어 통째로 갈아야 하는데 그럼 차라리 새 자전거 사는 게 낫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잘못 본 거라고 믿고 싶더라. 머리카락 같은 게 달라붙은 거겠지. 그러나 무시하고 그대로 타다가 빠각 깨지면 운 좋으면 중상이요 운 나쁘면 사망이니, 그길로 자전거포로 갔다. “여기 살짝 금 간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겉보기만 그럴 뿐 진짜로 금 간 건 아닐 겁니다, 그쵸?” 물어보니 냉혹한 수리공 답하길, “크랙 같으면 크랙입니다.” 순간 눈앞을 스치는 지난날 안타까운 기억들. 카메라, “곰팡이 같으면 곰팡이입니다.” 야구방망이, “깨진 거 같으면 깨진 겁니다.” 참 무정한 사람들. 하지만 그들이 옳다. 그런 것 같으면 그런 것이다. 바로 그때 딱 멈춰야 한다. 돈 들이기 아깝다고 경고 무시하면 더 큰 피해 보게 되니, 욕심은 재앙의 싹. 어째 좀 시시한 이야기 같지만 규모만 키우면 아주 무시무시해진다. 국토교통부는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건설사들의 수직증축 리모델링 요구를 불허했다. 다년간의 기술적 검토 끝에 내린 마땅한 조치였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허용으로 돌아섰다. 이유는? ‘부동산 거래 활성화를 위해’, 안전을 포기한 것. 허튼 욕심은 무분별한 규제 완화로 구체화된다.
우리는 지금도 대참사의 징후를 목격하고 있다. 단지 아니라고 믿고 싶을 뿐. 서울 잠실 석촌호수는 해마다 20만톤의 물이 증발하는데, 요즘은 15만톤이 더 사라진다. 마침 80미터 떨어진 곳에 짓고 있는 지상 123층 초고층 건물이 매우 의심스럽다. 지반 공사 중에 수맥 잘못 건드렸다고 가정해 보자. 지하수 빠져나간 틈으로 호수 물이 흘러드는 거라고. 지나친 상상 아니다. 실제로 해당 공사장에는 매일 수백톤의 지하수가 솟구쳐서 억지로 한강으로 내보내고 있으니까. 그런데도 건물주 회사는 완전히 무관하다고 우긴다. 그러면서도 강에서 물 끌어와 호수 물높이 맞추는 비용은 꼬박꼬박 내는 까닭은 그들이 석촌호수를 너무나 아끼기 때문? 뭐 그렇다 치더라도 언제까지 그럴 작정인지. 여기선 퍼오고 저기선 내보내고 참 부지런하긴 한데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 아니다. 지금은 호미로 대충 막고 있지만 나중엔 가래로도 막을 수 없다. 지하수 유출 후 빈 공간, 위에서 누르는 압력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지반 붕괴 위험이 커진다. 초고층 건물 아래 싱크홀이라, 상상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일단 모든 일을 멈추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며칠 밤낮 뉴스 화면만 바라보며 꺽꺽거리며 우는 짓,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 절대!
박지훈 소프트웨어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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