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4.06.04 18:19 수정 : 2014.07.17 17:10

일러스트레이션 박지훈

[매거진 esc] 박지훈의 서바이벌 대작전

평소 소방방재청에 불만 많다. 사사건건 이걸 왜 이리 하느냐 저걸 왜 저리 하느냐 따진다. 소방관들의 답답한 심경 아주 모르는 건 아니다. 산만한 조직, 위험한 업무, 부족한 인력, 열악한 장비, 부실한 보급 때문에 그렇잖아도 힘든데 겨울엔 고드름 여름엔 벌집 떼고 잠긴 문 따고 등 허드렛일까지 2조 2교대. 심지어 대통령 취임식 한다고 휴일 비번까지 싹 다 동원해 의자 닦고 바닥 청소 시킨다. 소방관의 평균 수명은 58.8살, 인구 전체 평균보다 무려 18살이나 낮다. 부상과 후유증에 대한 의료 지원, 순직과 산재 처리 기준 확대 요구도 늘 헛일. 만족 불만족을 가릴 것도 없이 딱한 처지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잘해 주길 바랄 수밖에 없다. 왜? 죽을 사람 살리는 게 소방관의 일이니까. 무조건 잘해야 한다.

국가안전처 신설. 구절구절 들어 보니 막강한 범정부 방재 안전 컨트롤타워 어쩌고저쩌고 하던데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다. 힘있는 장관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까닭도 모르겠고. 안전이 중요해서? 아니 그럼 여태 안전이 중요한지 몰라서 안전하지 않았던 게냐. 듣자 하니 일전에 국회에서 “너나 잘해!” 막말 외치던 사람이 장관 ‘0순위’라는 소문 파다하던데 역시나 안전에 관한 아무런 이력 없는 사람. 관료의, 관료에 의한, 관료를 위한 인사의 끝장을 볼 작정인가 보다. 물론 어떤 조직이 맡은 바 직무의 전문성만으로 해당 조직 우두머리의 역량을 판단할 수는 없다. 어떤 조직의 최고 계급에 어울리는 자는 일선 전문가들의 수다스러운 보고서를 종합해 좀더 넓게 일반적으로 통찰하는 자니까. 하지만 어떤 조직이든 조직의 역량은 그 내부에 속한 자 스스로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 조직 전체의 장이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동기를 양분 삼아 성장하는 법이다. 그래서 낙하산 인사가 나쁘다는 것이고. 더군다나 그 조직의 임무가 목숨 내걸고 싸우는 일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전쟁터에서 총도 쏠 줄 모르는 상관이 내리는 명의 영이 살겠는가.

소방방재청은 해체되어 국가안전처 밑으로 간다. 국토의 모양과 넓이, 지방자치단체의 열악한 재정과 행정 전문성 등 이런저런 형편을 헤아려 보면 중앙 집중 방식 자체는 나쁘지 않다. 지금은 소방관 대부분이 각 지방자치단체 소속이다 보니 나라 전체에 걸쳐 고르게 집행되어야 하는 예산이 지역마다 들쭉날쭉 제멋대로라 인력과 장비의 수준과 체계 등이 동네마다 다르다. 안전마저도 빈부 격차가 있다는 뜻이니 매우 심각한 문제, 어떻게든 해결해야만 한다. 그런데 계획을 들어 보니, 기존 국가직 300명만 이동하고 지방직 4만명은 그대로 유지하겠다? 아니, 무슨 일을 이런 식으로 하나, 뭐가 문제인지 정말 모르는 건가. 일개 정권 고작 5년, 결코 길지 않다. 행정 조직 구성만 살짝 바꾸면 뭐든 어떻게든 될 것 같지만 착각일 뿐, 본질인 사람의 마음은 변함없다.

어쨌든 소방관은 무조건 잘해야 한다. 당연하다. 허나 작금의 판세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그 당연함에 아주 약간이나마 타격을 가할 때 아닌가 싶네.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해 줘야 할 때. 어려운 일 아니다. 소방관이 작정하고 농성하면 누가 감히 대적하겠나. 최루액도 진압봉도 심지어 물대포도 무용지물, 소방 장비가 훨씬 더 강하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손 떼면 불은 누가 끕니까?” 되묻는다. 아, 이 양반들, 너무 착하다. 지나치게 착하다.

박지훈 소프트웨어 디자이너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 박지훈의 서바이벌 대작전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