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8.06 18:57
수정 : 2014.08.07 13:59
|
일러스트레이션 박지훈
|
[매거진 esc] 박지훈의 서바이벌 대작전
어떤 노인의 주검과 잇단 뒷담화에 지쳤다. 그가 부도덕한 사업가 그리고 파렴치한 사이비 교주였음은 어쨌든 사실인 듯하다. 그러나 오직 그에게만 집중된 이야기들은 감히 “억울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과 그에 합당한 예우를 따질 수는 있지 않겠나. 뭐라 뭐라 말 많더라만 난 그 죽음이 그리 함부로 취급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도대체 왜들 이러나? 그가 떠올리기마저 끔찍한 ‘그 사고’의 핵심 본질은 아니지 않은가? 당연한 의문을 품는 일반인의 법 상식을 막 뒤집던 법 전문가들은 이제 와서야 “죄의 연관성을 입증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며 꼬리를 감춘다. 사건 전말에 대한 책임을 백일하에 낱낱이 드러내야 할 음흉한 자들은 거대한 검은 안개 와중에 여전히 컴컴한 곳에 숨어 있다. 그런데도 정부 발표를 믿지 않는 국민들이 야속하고 섭섭하단다. 그러지 마시라. 그런 불신과 괴담의 책임은 매우 수상하지만 똑똑하지는 않은 정부의 어정쩡한 태도에 있으니까.
세상만사 요지경이라 나로선 도대체 이 혼돈을 이해할 수 없다. 들어도 모르겠다. 그들은 명명백백 밝히겠노라 떠들어 대지만 그 가능성은 애초부터 의문이었다. 한국에서 활동 중인 법의학자는 40여명에 불과하다 한다. 가까운 일본의 1700명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니 더 이상 어렵고 복잡하게 생각하지도 못하겠고 차라리 그냥 간단하게 보련다. 어느 유명 법의학자의 발언을 빌려, “이상하다. 다 이상하다. 이상하지만, 참고, 꾹 참고. 시체가 이렇게 되기도 하는구나,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그러니 그냥 그렇다고 치고 생존지상주의자의 입장으로만 현장을 바라보자.
몇 가지가 눈에 띈다. 우선 육포. 유류품 중 육포가 발견된 걸로 봐서 장기간 도주를 준비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건, 어떤 육포인지를 모른다. 육포는 재료 고기의 부위와 첨가물의 종류와 양 그리고 제조법에 따라 생존음식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조미료와 향신료가 많이 첨가된 육포는 생존음식으로 적당하지 않고, 요즘 유행인 반건조 육포는 저장성 문제도 있다. 결정적 변수는 소금의 양. 소금은 양념으로도 쓰지만 고기를 절여 피와 수분을 빼기 위해 주로 쓴다. 그렇잖아도 지방 적고 단단한 고기라 소화를 위해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한데 염도까지 높다면 너무 많은 물이 든다. 물은 음식물의 가수분해, 추출한 영양 성분이 세포에 이르기까지 수송, 몸에 흡수된 성분이 에너지로 바뀌는, 소화의 전 과정에 필요하다. 그러니 생존에 있어 소금은 필수 불가결하나 지나친 섭취는 오히려 해롭다. 신선한 우둔살을 약간의 간장으로 양념하고 자연 건조한 한국 전통 방식 육포라면 훌륭한 생존음식이지만.
아니, 이 중차대한 사건을 두고 시시한 육포 이야기나 하고 있으니 한심하다고? 글쎄, 죽은 노인의 아들이 ‘소심한 목소리로 뼈 없는 통닭을 주문했다’는 뉴스 특보보다는 덜 한심하지 않나? 그는 닭 싫어하고 은신처 복도 폐회로화면(CCTV)을 봐도 아무도 출입하지 않았으니 그마저도 사실이 아니지만, 그 또한 중요한 일 아니니 결국 전파 낭비일 뿐. 이 사건에서 인간 생존에 가장 위협적인 요소는 쓰레기 언론의 황당한 보도를 보며 쌓이는 스트레스 아닌가 싶을 지경인데 육포 이야기가 뭐가 한심해?
박지훈 소프트웨어 디자이너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