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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9.03 21:18 수정 : 2014.09.04 10:49

일러스트레이션 박지훈

[매거진 esc] 박지훈의 서바이벌 대작전

영국 어느 회사에서 창문 없는 비행기를 만든다는 뉴스에 헉, 놀라다. 창문 대신 하늘과 구름 비추는 디스플레이 장치로 대체한다는 발상인데, 비행기 창문은 사고 발생 때 바깥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필수다. 그래서 이착륙할 때 승무원이 창문 열라고 안내하는 것. 상황 파악 목적 외에도 창 없이 밀폐된 곳에서는 감각이 둔해져 비상탈출 전후 상황에 즉각 대처가 어려워진다. 문 앞에서 버벅거리다가 완전 아수라장. 근데 창문을 없애고 유사시 고장 날 게 뻔한 전자식 장치로 대체하겠다? 물론 그들도 나름 고민에 고민 거듭하고 있겠지만, “창문 없는 비행기가 승객들에게 인기가 없을 것 같지만 파란 하늘을 보여 주면 좋아할 것”이라는 발언으로 짐작하건대 안전 문제는 뒷전인가 보아.

간단히 말해, 생존은 수동식 그리고 기계식이다. 생사가 걸린 결정적 도구는 손으로 직접 다룰 수 있어야 하고 고장 나면 땅땅 두드려 대충 고쳐 쓸 수 있어야 한다. 좀 거칠긴 하나 전쟁기계를 예로 들면, 일본 자위대(라 해야 하나 이제 군이라 해야 하나 아무튼 참 번거로운 나라의 무장단체)가 전자식 장비 개발 집착 심한 편인데 각종 무기에 전자계 부품을 잔뜩 집어넣는다. 그리고, “발사가 되지 않습니다.” 무기 강국들이 괜히 핵심 부품만큼은 꼭 수동식 기계식으로 만드는 게 아니다. 어디 무기뿐이랴, 현관문이나 자동차문 등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물건들은 모두 결정적 순간에 수동 조작 가능해야 한다. 비교적 안전 관련 규정이 엄격한 자동차 쪽에서마저 가끔 위험한 소문이 떠돈다. 안팎에 문손잡이가 아예 없는 자동차를 개발하려는 이유가 “보기에 예뻐서”라니, 위험한 짓을 큰돈 들여 기어이 하고야 마는 고비용 집단자살 노력은 한국뿐 아닌 세계적 현상인가, 뭐 그런 생각마저 든다.

개중 가장 요주의 대상은 자동차. 차에서 탈출하지 못해 일어나는 사고가 제법 많다. 장마철 침수로 인한 어이없는 죽음도 흔하다. 해안이나 강변도로에서 운전자 부주의로 차가 물에 빠질 때도 있다. 차량 기관부가 물에 잠기면 시동이 꺼지고 각종 장치들도 멈춘다. 다행히 물높이가 낮아 문을 열 수 있다면 무조건 차를 버리고 달아나 안전한 곳으로 대피한다. 때를 놓치면 문뿐 아니라 창도 열 수 없다. 그리되면 차라리 물이 목 높이로 차오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문 잠금을 해제하고 두 발로 힘껏 차서 연다. 물속에서 문을 열려면 평소보다 훨씬 더 큰 힘이 필요하다. 문을 열기 직전까지는 안전벨트를 풀면 안 된다. 물에 든 몸이 차 안에서 돌아다녀 제대로 된 동작을 취할 수 없다. 상황이 그쯤 되면 안전띠까지 고장 났을지도 모르니, 끈을 자르는 칼과 유리를 깨는 망치가 함께 달린 탈출도구를 미리 마련해 두는 게 좋다. 창을 깨야 할 상황이라면 앞창 말고 옆창이나 뒤창을 깬다. 앞창은 유리 두 장 사이에 플라스틱을 넣은 접합 유리라서 전용 연장 없이는 파괴와 탈출이 거의 불가능하다.

거듭 말하는 바, 생존은 수동식 그리고 기계식이다. 생사가 걸린 결정적 순간에 이르면 자동식 그리고 전자식 물건은 모두 고장 난다고 봐야 한다. 그럼 그나마 살 수 있는 방법 또한 수동식, 자기 힘으로 직접 문제를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박지훈 소프트웨어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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