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소설 <10화>
아버님이 오랫동안 눈을 감았다. 덜컥 아버님께 변이 생긴 것인가 겁이 났다. 조심스레 아버님에게 다가갔다. 쌕쌕, 아버님의 숨소리를 들었다. 평온한 호흡이었고,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몸을 무르고, 입을 모아 호롱불을 껐다. 훅, 불이 꺼지자 어둠이 퍼졌다. 코끝에 매캐한 냄새가 돌았다. 몸을 일으키려 했을 때,
“이걸,”
이불 속에서 마른 나뭇가지 같은 팔이 솟아 나와 쥔 것을 내밀었다. 고약한 것을 건네려는 것인가 싶어 머뭇거렸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건네는 것을 받았다. 사내의 엄지손가락만 한 물건이었다. 몹시 가벼워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지만 손에 내려놓은 부분은 축축하고 물컹거렸다.
“내일은 좋은 것을 먹자.”
아버님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절을 올리고 밖으로 나왔다.
뿌연 달빛에 물건을 비춰 보았다. 그것은 거무튀튀한 벌레의 고치였다. 누에, 아니면 나방인가? 무슨 벌레인지 알 수 없었다. 둥글게 말린 고치는 갓 지어진 것인지 손으로 집은 곳에서 진물이 묻어 나왔다. 대체 아버님은 이것을 어디에서 얻으셨을까. 의문과 함께, 비로소 명확한 실감이 들었다. 내가 알던 부친은 이제 없었다. 눈먼 미친놈에게 마음을 쓰고, 법을 이야기하던 엄하고 튼튼한 사내는 사라지고, 방 안에는 그저 속절없이 사그라진 육신이 누워 있었다.
몹시 막막하여 달을 보며 잠시 서 있다 방에 돌아왔다. 자리에 누워 눈을 감자, 밤은 조용했고 모두 잠들었다.
보름 정도가 지나고, 아버님의 목숨이 다했다. 정확히 날을 헤아릴 순 없다. 낯선 일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상은 형제들이 도맡았고, 나는 일을 했다.
꽤 오랫동안 아버님이 건넨 벌레의 고치를 간직했다. 작은 상자를 구해 고치를 놓아두었다가 아버님이 생각날 때면 꺼내어 보았다. 안에서 벌레가 날개를 펴고 나오는 순간을 기대한 적도 있었지만, 고치는 날이 갈수록 바래었고, 아예 한쪽 귀퉁이가 까맣게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고치가 썩어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휑했다. 가끔은 그 썩은 부위에 몸과 마음이 온통 물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어느 밤 참지 못한 끝에 뒷마당의 문을 열어 상자 째 내던져 버리고, 잊었다.
그리고 내쉬었을 때, 팔에 낀 상자가 소리 없이 바닥으로, 기어 다니던 거미 위로, 쿵, 떨어져 내렸다. 소경이 떨어뜨린 산가지가 어디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남은 산가지 다섯도.
상자를 주우려 몸을 굽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나는 네발짐승처럼 바닥에 엎드렸다. 손을 뻗어 상자를 챙겼다. 상자를 치운 자리에 거미의 잔해가 있었다. 멍하니 검게 문드러진 거미를 내려다봤다. 시커먼 진물에선 달짝지근한 냄새가 났다. 새까맣게 물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나, 나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역참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당직을 맡은 사관을 깨우고, 용무를 전했다. 잠이 덜 깬 사관의 얼굴이 슬쩍 일그러졌다.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놈이었다. 혼을 낼 수도 있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말을 내오는 동안 사관은 눈을 가늘게 뜨고 참수장 방향의 봉화대를 살폈다. 내심 집행이 끝났다는 봉화가 오르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사관이 바라보는 방향을 좇았다. 어두컴컴한 하늘 아래, 산은 먹빛이었다.
파발마의 준비가 끝났다. 사관은 허연 입김을 뿜으며 세차게 고개를 젓는 말을 쓰다듬고는 그 위에 올라탔다. 말 위에서 사관이 끝내 못마땅한 투로 덧붙였다.
“망나니들은 목을 빨리 치지요. 이제 달려봤자 늦었을지 모릅니다.”
“불길한 일을 그리 서두른단 말이냐?”
“불길한 일이기에 더욱 서두르지요.”
당돌한 말이지만, 틀린 얘기도 아니다. 옆에 끼고 있던 상자가 더할 나위 없이 무거웠다.
그때, 머리 위로 바람이 들었다. 역참의 흙바닥에서 홀씨들이 피어올랐다. 하늘하늘 날아오른 홀씨는 침침한 허공 속으로 이내 모습을 감췄다. 홀씨가 사라진 곳으로 멍하니 눈을 두었을 때, 참수장 쪽 산 너머에서 옅은 빛이 새어 나왔다. 어디선가 매캐한 냄새가 났다. 상자가 열리고, 죽거나 혹은 살거나. 새벽 나절의 어슴푸레한 빛줄기를 바라보며.
꽃이 피겠는가? 답이 돌아올 리 없지만, 나는 중얼거렸다.
“뭐라고요?”
사관이 물었다. 피든, 혹은 지든.
사관에게 말했다.
“일없다. 서둘러라.”
말이 달려 나갔다.
(이상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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