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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8.13 10:02 수정 : 2013.08.20 10:17

윤고은 소설 <2화>



경찰서는 내키지 않았습니다. 내가 몇 십 년 전에서 왔다고 하면 나를 어떻게 보겠습니까. 다만, 나는 내 집이 궁금했습니다. 공중전화 부스에서 120이란 번호를 읽었습니다. 다산콜센터라고 하던가요, 서울 시민을 도와준다던 그 번호가 전화기 옆에 붙어 있었던 겁니다. 주머니에 있던 동전 몇 개로 다산콜센터는 금방 연결이 되었습니다. 다옥정 7번지가 어디로 갔느냐는 내 질문에 상담원은 얼른 대답하지 못했지만, 곧 다옥정이란 지명이 오래전에 다동으로 바뀌었다고 말해주더군요.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1946년에 있었던 변화라고 설명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곧 이걸 찾았던 게 아니냐는 듯이 물었습니다.

“혹시 소설가 구보 씨의 집을 찾으시는 건가요?”

구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유명해진 게 분명했어요. 상담원은 내게 다옥정 7번지로 짐작되는 그 부근에는 현재 한국관광공사 건물이 들어서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가는 길도 설명해주었죠. 다옥정 7번지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은 종각역이었습니다. 종각역 5번 출구로 나와 조금 걸으면 광교가 보이고, 광교를 지나 오른쪽으로 동선을 틀면 다옥정 7번지로 짐작되는 곳이 나타나는 겁니다. 상담원이 그러더군요. 좋은 산책 하시라고. 산책이라니, 그러고 보면 순서가 좀 이상하죠, 원래 구보는 다옥정 7번지의 문을 밀고 나와서 광교를 지나며 산책을 시작합니다만, 나는 이미 그 문장 두 개를 거꾸로 행한 셈이니까요. 어쨌거나 거슬러 올라간 다옥정 7번지 부근에는 듣던 대로 웬 건물이 커다랗게 서 있었습니다. 그 부근 건물들이 다 그렇게 크긴 했지만요. 주변으로 몇몇 외국 관광객들이 맴을 돌고 있었고요. 내 집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나는 한국관광공사 안으로 들어갔지요. 내 집터를 반쯤 잘라먹은 채 그 위에 세워진 건물로 말입니다. 안내 직원에게 묻거나 요구할 것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상태인데, 금방 내 순서가 되어버렸습니다. 직원은 겨우 “구보 씨”까지 말한 내 앞에서 이렇게 반문했습니다.

“누구요?”

“구보요.”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하고 나는 덧붙였습니다.

“일본인인가요?”

“누가요, 제가요? 구보요? 아니, 둘 다 조선인인데요.”

그렇게 말하고서 나는 금세 “한국인이요”라고 정정했습니다. 구보는 바로 자신의 집 앞에서 국적 불명이 된 거로군요. 그건 곧 나의 국적 불명과 다를 바가 없고요. 뻘쭘해진 나는 구보 씨의 일일 어쩌고 하며 중얼거리다가 그만 돌아섰습니다. 관광공사 직원은 내 뒤에서 푸념을 하더군요.

“자꾸 만드는 게 많은데 우리에게 다 알려주는 건 아니니까요, 소설 제목이 들어본 것 같기는 한데…….”

나는 그 직원에게 다산콜센터 여자의 번호를 알려주려다가 말았습니다. 그래 봤자 120. 특별한 정보도 아니니까요. 그냥 모든 게 지치고 힘들기만 해서, 관광공사 앞 긴 의자에 앉아 무형의 집을 바라보았어요. 내 고향 집 말입니다. 이제는 번지수도 문패도 없는, 벽도 담도, 밀고 나올 문도, 그 안에서 웅크릴 만한 방도 없는 허공의 집. 아무도 두드리지 않는, 바람과 햇빛만이 의식하는 집. 그 집으로 들어갈 길을 몰라 나는 한동안 멍하니 있었습니다. 지금은 도로와 물길이 내 살던 곳의 지분을 나눠 갖고 있는 거고, 나는 누구에게도 속하지 못한 채 여기 이러고 있습니다. 이대로 한잠 자고 일어나면 혹시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가 있지 않을까, 막연히 그런 생각도 해봤지만 그것도 이미 식상했어요.

그때 누군가 내 등을 두드렸습니다. 아까 그 안내데스크의 여자였어요. 여자가 고충을 해결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명함을 내밀었습니다.

“끝까지 해결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마 거기선 내 고충을 끝까지 해결해줘야만 하는 모양이었습니다. 이름을 남겨달라고 해서, 나는 ‘박태원’이라고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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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윤고은의 <다옥정 7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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