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고은 소설 <3화>
연락처가 없었지만 여자는 어렵지 않게 내게 연락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일정한 시간마다 한국관광공사 앞 긴 의자에 앉아 있었거든요. 대부분 같은 옷차림으로요. 다른 시간에는 주로 어디에 있었느냐고요? 할 건 많았습니다.
드라마를 좀 봤습니다. 서울역에서요. 야구 중계도 재미있었죠. 텔레비전은 내게 이 시대로 옮겨온 당위성을 알려주는 것 같아서 보고 있으면 평온했습니다. 이 시대는 내가 떠나왔던 그 시대로부터 아주 멀리 가진 않은 것도 같았어요. 마냥 다르지도 않고 마냥 같지도 않은, 그저 약간의 반복과 변주로 이루어진 속편 같았습니다. 그때와 비슷한 상황들은 계속 일어났고, 단지 그때는 첨단이었던 것들이 지금은 낡은 것이 되었다는 것 정도가 다를 뿐이었죠. 이 속편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건 텔레비전이었습니다.
서울역에서는 무수히 많은 바퀴들이 출발하고 도착하는 모양이었지만, 목적지가 분명하고 운임이 비싼 기차에는 관심이 가지도 않았어요. 지하철, 지하철이 그나마 가장 정감이 갔어요. 1호선, 혹은 2호선, 3호선이나 4호선, 끝없이 뻗어나가는 지하철에 올라타 몇 페이지를 산책하는 겁니다. 그렇게 돌고 돌고 돌다가, 어느 틈에는 다옥정 7번지 앞, 다시 그 한국관광공사 앞 의자에 닿곤 했습니다. 마치 항구에 정박하는 배처럼 말이죠.
하루 만에 여자는 서류 봉투로 하나 가득한 자료를 가져왔습니다. 나를 보자마자 이 앞이 구보의 집터였다고 인정하더군요. 자신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잘 몰랐다면서요. 그러면서 구보는 작가 박태원의 호라는 걸 알고 계시나요, 어쩌고저쩌고 하며 갑자기 불어난 구보에 관한 지식들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여자는 내게 몇 개의 브로슈어를 전해주고는, 혹시나 더 많은 정보를 원한다면 인문학 박물관, 서울문화재단이나 구보학회 등을 참고하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작가 박태원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1930년대 경성의 정보들까지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거라고요. 여자가 갑자기 너무 많은 정보들을 주는 바람에 나도 뭔가를 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여자에게 받은 명함을 다시 돌려줄 수는 없는 거겠죠, 그건 좀 이상하니까요.
‘구보 따라잡기’라는 이름의 홍보물도 여자가 남겨두고 간 종이 더미 속에 있었습니다. 맨 앞 장에 박태원을 찾는다는 말이 적혀 있었으니, 내가 그걸 유심히 보게 된 건 당연한 거죠. 자세히 읽어보면 진짜 나를 찾는다는 게 아니라, 박태원 역할을 할 안내원을 모집한다는 구인공고였습니다만, 그래도 내가 솔깃할 만한 정보가 있었습니다. 그 구인공고를 주관하는 곳이 ‘구보의 집’이었기 때문이에요. 정확히 말하자면 ‘이전된 구보의 집’.
안 가볼 수는 없었던 거지요. 터는 다르지만 구보 박태원의 다옥정 7번지를 재현한 곳이라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거예요. 물론 면접을 보러 간 건 아니었지만 말입니다. 나는 단지 그 이전된 구보의 집을 보기 위해 줄을 섰습니다. 그 이전된 구보의 집에 들어가기 위해 배부 표를 받았고, 내 이름이 또렷하게 적힌 종이 명찰을 가슴에 달았고, 30년대의 문학이니 서울이니 하는 것에 관해 묻기에 아는 대로 대답하다가, 마침내 이런 말을 듣게 된 겁니다.
“우리는 박태원 씨를 박태원으로 고용합니다.”
그들은 합격자가 박태원과 동명이인이라는 게 재미있다고 말했지만, 사실 동명동인이라는 걸 안다면, 진짜 이 집의 담당자가 자신들이 아니라 나여야 마땅하다는 걸 안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요. 박태원이 박태원을 흉내 내다니요. 내게는 박태원이 아니면서 박태원이 되겠다고 찾아온 다른 사람들이 더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뭐랄까, 사기꾼처럼 말이죠.
출근은 오전 9시까지, 퇴근은 오후 6시부터.
“6시부터라는 겁니다. 6시 칼퇴근이 아니고요. 남아서 해야 할 업무도 종종 있으니 진짜 퇴근까지는 항상 텀을 두세요, 텀을.”
관리과장이라는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는 점심시간이나 휴무, 그리고 꼭 받아야 하는 교육 일정에 대해서도 말해주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하루 여덟 시간을 박태원으로 살고, 한 달에 150만 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유명한 작가가 되니 과거의 내가 후대로 날아와도 먹고살 길이 생기는구나, 싶어서 나는 좀 으쓱해졌는데요. 그건 어디까지나 다른 열 명의 박태원과 마주치기 전까지의 착각에 불과했습니다. 구보의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된 박태원은 열 명이 넘었던 거예요. 그리고 그중에서는 내가 가장 간당간당하게 통과된 구직자였습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외모 때문인 것 같더군요.
외모 때문에 통과된 거라고 생각하지는 마세요. 오히려 그 반대니까요. 되레 나를 구원한 건 일본어 회화 실력이었습니다. 더불어 내가 그 시대의 명칭들을 잘 아는 것도 플러스 요인이 되었죠. 외모는 나의 채용을 끝까지 망설이게 만들었던 요소였어요. 나중에야 면접을 진행했던 무슨 이사라는 사람이 내게 슬쩍 그러더군요. 살을 좀 빼보라고요. 박태원은 사진이 많이 공개되어서 대중들이 다 아는데, 이왕이면 좀 비슷한 게 좋지 않겠냐고요.
내 기분이 얼마나 황당했을지는 말 안 해도 알겠죠? 그 박태원의 사진이란 게 말입니다. 사실 내 것이 아니라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그 사진과 나는 한참 다릅니다. 그 버섯머리 하며 안경 하며, 나는 생전 그런 머리를 해본 적도 없고, 30년대에 쭉 살았다 하더라도 그런 머리를 할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내 취향이 아니라고요. 박태원의 사진을 보고 나는 너무 놀랄 수밖에 없었는데, 그건 내가 아니라 하 군의 얼굴이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돌고 도는 사진은 박태원의 것이 아닙니다. 진짜 내 얼굴은 역사적으로 누락되고 만 거예요. 지금 사진 속의 인물은 박태원이 아니라 내가 한때 아꼈던, 그러나 배신감만 남기고 떠났던 후배 하 군이라고요. 그러나 하 군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도 아니고, 하 군이 누구인지 설명해도 알 사람이 없으니 답답할 수밖에요. 나야말로 왜 하 군의 사진이 그의 이름이 아니라 내 이름을 달고 후대로 전해졌는지 알 리가 없으니 황당할 노릇입니다. 하 군이 실제 나보다 더 잘생기긴 했지요. 정말 역사는 승자의 것이란 말입니까. 이 상황을 보자면, 우리가 알고 있는, 이미 죽어버린 유명인들의 얼굴에 대해 우리는 의심을 가져볼 만한 겁니다.
그럼 진짜 박태원은 어떻게 생겼느냐고요? 나를 보세요. 체구도 크고 살집도 있습니다. 안경은 쓰지 않고요. 어쨌거나 내 앞으로 아홉 명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놈의 사진과는, 내가 제일 안 닮았더군요. 우리는 같은 옷을 받았고, 서로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담당구역을 배정받았습니다. 안경도 받았지요. 그중에서는 아무런 꾸밈이 필요 없을 만큼 이미 박태원(정확히는 박태원으로 알려진 하 군)과 비스름한 차림의 사람도 있었습니다. 면접 때부터 그렇게 등장해서 다른 경쟁자들을 외모로 기죽였다고 하더군요. 수많은 박태원들 중에 진짜 박태원은 나 하나라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지만, 뭐, 괜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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