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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8.16 10:11 수정 : 2013.08.20 10:17

윤고은 소설 <4화>



박태원의 사진이 잘못 알려진 것과는 반대로, 구보의 집은 실제와 너무도 비슷해서 놀라웠습니다. ‘다옥정 7번지’라는 동판이 대문 옆에 붙어 있는 집이었죠. 물론 그건 이 집의 주소가 아니라 이름이었지만, 주소는 달라도 내부가 같아서 좋았습니다. 정말 내가 썼던 것 같은 책상과 의자가 그대로 있었고요. 앉은뱅이책상에는 내가 한때 실수로 냈던 흠집까지 여전해서, 이게 치밀한 재현인지 아니면 우연인지, 혹은 박태원의 유품이(유품이란 말이 불편합니다만) 흘러온 건지는 몰라도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나는 가장 먼저 출근해서 가장 늦게 퇴근했습니다. 사실 퇴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아침이 되면 문이 열렸다가 밤이 되면 문을 닫아야 하는, 시한부 집이었습니다. 아침 7시부터 방문객들이 찾아오기 전까지, 그리고 방문객이 떠난 후의 얼마간이라도 여기에 멍하니 앉아 있기 위해서는 박태원 역할에 충실해야 했습니다. 이게 여기 머물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으니까요.

아침 9시가 조금 넘으면 구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옵니다. 그러면 나는 몇 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구보의 소설 속 산책로를 걷는 겁니다. 사람들을 비엔나소시지처럼 줄줄이 달고 말이죠. 내가 아닌 다른 박태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흑백 사진 속 박태원과 똑같은 차림새를 한 채로요. 박태원이 소설 속 구보의 동선을 재현하며 안내한다는 게 ‘구보 따라잡기’의 요지였습니다. 적절한 타이밍에서 이런 설명도 해주고요.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은 1934년 8월 1일부터 9월 11일까지〈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된 박태원의 중편소설로, 1930년대 서울의 어느 하루를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소설가인 주인공 ‘구보’가 서울을 걷고 또 걸으며 주변부를 느끼고 기록하는 것이 대략적인 줄거리인데요, 어떤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지는 않고 주인공의 의식을 따라 소설이 진행되지만, 사실 그 하루는 모든 수많은 사건의 집합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박태원은 이 소설로 당시 문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으며, 지금까지 모더니즘 문학의 대표적인 인물로 거론되고 있지요. 이상, 김기림, 이태준, 정지용, 이효석 등과 함께 구인회 활동을 했던 박태원은 그 1930년대에 확연히 새로운 소설가였습니다.”

내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있다는 걸 눈치챈 사람이 있었을까요. 사람들은 즐거운 경험을 하는 것처럼 보였고, 초반에는 나 역시 그랬습니다. 어느 정도의 설명이 끝나고 나면 이제 다옥정 7번지를 떠날 시간이 왔습니다. 나는 단장과 대학노트를 가지고, 줄줄이 비엔나처럼 사람들을 달고 걸었지요. 구보처럼 광교를 지나 왼쪽으로 몸을 틀고 화신상회를 향해 걸었습니다. 지금은 종로타워라고 하더군요. 불과 며칠 전에(분명 내 기억으로는 그렇습니다. 그 거대한 시간의 단층을 경험하기 전에 말이에요) 나는 저 화신상회 내부를 수직으로 재단하는 엘리베이터를 한참 구경하곤 했죠. 그러다 그 수직의 힘에 대한 반동처럼, 재빨리 움직이는 전차 안으로 뛰어들기도 했죠. 지금은 저 엘리베이터보다도 차라리 이미 멸종한 전차가 나타나야 사람들이 구경을 할 테지만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전차의 선로는 보신각 네거리에서 시작해 동대문까지 이어져 있었죠. 그러나 지금 보이는 건 ‘바르게 살자’는 돌에 새긴 글귀와 어색한 자막처럼 지나가는 마차 한 대뿐입니다. 전차는 사라지고 이제는 마차가 다니더군요. 4인에 1만 원, 글귀를 써 붙인 마차 안에는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이 둘 타고 있었어요. 몇 걸음 걷다 보니 또 한 대의 마차가 등장했습니다. 버스, 택시, 일반 승용차, 오토바이가 두서없이 지나갔죠. 나는 잠시 어지러워서 티가 안 날 만큼 아주 조금만 걷는 속도를 늦췄습니다.

나는 하루에 여덟 시간 일했고, 그중 절반 이상을 거리에서 보냈습니다. 구보의 산책 코스에서요. 이 산책을 반복하는 동안 어쩌면 소설가가 작품에 실제 공간적 배경을 등장시키는 것은 사라지지 않을 증인을 하나쯤 세워두려는 이유에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물론 나는 그런 것까지 염두에 두고 당시의 경성을 다룬 건 아니었습니다. 그땐 경성보다 내가 먼저 사라질 줄 알았으니까요.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지금 나는 소설 속에서 등장했던 공간들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그 흔적을 더듬고 있지 않습니까. 1930년대 내 동선의 모퉁이에 있던 몇몇 아이콘들이 지금도 조금은 남아 있다는 게 나로서는 다행스러울 뿐입니다. 그때의 경성은 지금의 서울과 닮은 듯, 다른 듯, 아슬아슬하게 겹쳐 있어서 다른 그림 찾기를 하는 것 같았어요. 몇몇은 증인이 되어서, 몇몇은 전설이나 철 지난 유행이 되어서.

산책이 끝나자 비엔나소시지 중 누군가가 사인을 해달라더군요. 20대 초반 혹은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자였는데,《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내밀며 사인을 남겨달라고 해서 나는 주저앉을 뻔했습니다. 혹시 나를 알아보는 건가 싶었던 거죠. 중요한 보증서에 서명하는 것 같은 그런 모양새로 내 이름 석 자를 적어 넣었는데, 여자는 내 사인을 받아든 후 함께 산책을 했던 다른 사람들에게도 사인을 부탁하더군요. 결국 그 책의 속지에 오늘 함께 걸었던 여섯 명의 이름이 모두 적힌 셈이었습니다. 그들 중 아무도 자신들이 진짜 박태원, 그러니까 진짜 구보와 함께 걸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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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윤고은의 <다옥정 7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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