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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대 안에 있는 피엑스는 병영생활에 지친 군인에게 다양한 종류의 먹거리 및 생필품 쇼핑의 기회를 제공한다. 군 현대화와 함께 피엑스 시설과 판매 시스템도 크게 바뀌었다. 국방부 블로그 동고동락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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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군사 / 피엑스의 어제와 오늘
▶ 훈련소에서 갓 나온 이등병이 부대에서 가장 가고 싶어하는 곳은 단연 피엑스(PX)입니다. 그곳에 가면 달콤한 초코파이에 새우깡·아이스크림·냉동만두·컵라면 등 사제 음식을 실컷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피엑스는 면세된 가격으로 식품 등을 팔아 주머니가 가벼운 장병들이 모처럼 회포를 푸는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피엑스가 요즘 달라졌다고 합니다.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대한민국 군대를 다녀온 성인들에게 휴가와 외출, 외박을 빼면 단언컨대 ‘피엑스’(PX)가 최고의 즐거운 추억으로 떠오를 것이다. 이제는 ‘충성마트’, 혹은 각 부대의 이름을 딴 ‘○○마트’, 해군의 경우 ‘해군마트’ 등으로 불리지만 한여름 전투체육 후에 즐기는 청량음료나 빙과류, 겨울철 주둔지 경계근무 복귀 후 언 몸을 녹이는 따뜻한 캔커피는 천국의 맛이었다. 군을 제대하고 예비군 훈련을 갈 때나 군복무 중인 친척·지인을 면회 갈 때도 사람들은 피엑스를 가장 먼저 찾는다. 그만큼 군 장병들에게 피엑스는 지상낙원과 같은 곳이었고, 그 60년 역사는 군을 체험한 이들에게 아련하고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포스트 익스체인지·베이스 익스체인지 피엑스의 역사는 1952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9년 7월 육군에 창설된 후생감실이 3년 뒤 ‘미군의 피엑스 제도’를 본떠 병사용 피엑스를 개시한 것이다. 피엑스(PX)라는 단어는 포스트 익스체인지(Post Exchange)의 줄임말이다. 포스트란 육군의 주둔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영내 매점이라는 뜻이다. 공군에서는 비엑스(BX: Base Exchange)라고 부른다. 전시에도 부대가 이동하지 않는 영구 기지라는 의미의 베이스를 첫머리에 사용했다. 이렇게 주한미군의 영향을 받은 피엑스와 비엑스는 군의 영내 매점을 뜻하는 대표명사로 쓰이게 되었다. 주한미군의 경우 피엑스에서 전자제품과 기타 생활잡화까지 면세로 구입할 수 있다. ‘코미서리’(Commissary)라는 식품취급소가 따로 있어 미국 본토의 슈퍼마켓과 비슷하게 취급하는 품목의 종류가 많고 물량도 풍부하다. 이와 별도로 전투복에서 방탄 헬멧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군장류를 파는 군장점과 주유소까지 갖춘 거대 쇼핑몰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러한 영내 판매소들은 ‘에이에이에프이에스’(AAFES: Army and Air Force Exchange Service)라는 기관에서 운영하고 있다. 1950년대부터 유럽과 한반도에 주둔한 미군들은 이러한 대규모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한국군 피엑스가 1990년대까지 시행한 ‘통제식 판매’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다. 한국군의 ‘통제식 판매’는 옛 일본군의 군 매점과 비슷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피엑스의 옛 모습을 떠올려보자. 진열대 너머 피엑스병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병사들에게 물건을 팔았다.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피엑스 건물은 대부분 미군들이 쓰다가 남겨놓은, 이른바 ‘콘센트(퀀셋) 막사’로 불리던 간이막사였다. 조금 상황이 나은 부대의 경우 조립식 가건물이었다. 건물 내부는 요즘처럼 냉난방이 완비돼 있지 않았고, 목탄 난로나 선풍기가 고작이었다. 장병들은 그곳에서 피로를 풀고 고향에서 올라온 부모님이나 애인과 담소를 나누었다. 군에서 고생하는 장병들에게지상낙원과도 같은 피엑스
초코파이·새우깡 등
전통적인 인기식품에
미용제품·건강보조제까지 그러나 시중보다 비싼 가격에
유통기한 지난 불량식품까지
가격과 품질 문제 심각하다
관리 점검 노력 더 기울이면
질 좋고 싼 복지혜택 가능하다 통제식 판매가 이루어지던 시절 피엑스는 냉장 보관시설이 부족해 여러 곤란을 겪었다. 1970년대 후반에 등장한 ‘삼강사와’ 음료의 경우 오랫동안 팔리지 않으면 부풀어 오르기도 했다. 가난한 시절 지금보다 훨씬 더 적은 월급을 받던 장병들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신선한 제품보다 양이 많은 쪽을 택하기도 했다. 지오피(GOP: 전방 관측부대나 진지), 지피(GP: 경계초소), 해안 격오지 병사들에겐 이런 피엑스마저도 호사스러운 시설이었다. ‘황금마차’라는 이동식 순회 피엑스를 손꼽아 기다리는 것 외에는 달리 혜택을 누릴 길이 없었다. 간혹 근무여건이 좋은 격오지 부대에서는 중대 본부의 작은 창고에 피엑스 물품을 넣어두고 판매하는 간이 피엑스를 운용하기도 했지만, 이는 극히 일부 근무자들만 누릴 수 있는 행복이었다. 대부분의 병사들은 황금마차가 오면 마치 물을 가득 머금고 있던 댐이 물을 방출하듯 황금마차를 향해 뛰어나갔고, 수요 대비 부족한 물품 때문에 앞다투어 경쟁하듯 물건을 살 수밖에 없었다. 늦게 줄을 서거나 방문 순서가 후순위인 소초에서는 구입할 물건이 없어 발을 구르는 병사들도 많았다. 출입이 제한되는 지피 근무자들에겐 물건이 전달되던 케이블카가 피엑스 역할을 대신했다. 군용 내부 전화로 철책선 뒤편의 부대에 연락을 하면 필요 물품을 바구니에 담아, 연결된 케이블카를 이용해서 보내주었다. 그러면 빈 바구니에는 돈과 감사의 쪽지가 담겨 돌아왔다. 요즘에는 황금마차로 쓰이는 차량 대수와 운행 횟수가 증편되어서 이런 광경은 많이 보기 힘들어졌다. 해군의 경우 육군과 달리 흰색의 꽃마차라는 이동 피엑스가 운용되고 있다. 육·공군 마트보다 30% 비싼 민간위탁 해군마트 과거 피엑스의 인기 품목은 무엇이었을까? 전통적으로는 당도 높은 초코파이, 값싸고 양 많은 새우깡과 같은 간식류였다. 냉장 보관시설이 늘어나고 전자레인지가 피엑스에 비치되면서 ‘냉동만두’나 ‘꽁꽁짜장’, ‘꽁꽁짬뽕’과 같은 냉동식품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훈련 기간에는 도망갔던 여자친구도 돌아온다는 ‘맛다시’와 ‘참치 통조림’이 판매 순위의 상위권을 차지했다. 요즘의 신세대 장병들은 어떨까? 최근 한 조사기관에 따르면 ‘웰빙’이라는 트렌드가 군대에도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예전처럼 배를 채우기 위해 양 많고 값싼 먹거리를 찾지 않는다. 대신 다양한 종류의 커피와 차, 그리고 피부미용과 발 건강을 위한 미용제품, 몸짱이 되기 위한 건강보조제가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요구 품목도 다양해지고 양보다는 질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피엑스의 판매 방식은 ‘통제식’에서 ‘개방식’으로 바뀌었다. 피엑스라는 명칭도 2000년 9월에는 ‘충성클럽’으로 바뀌었다. 피엑스를 담당하던 각 군의 복지근무단도 2010년 국군복지단으로 변경되면서 공식 명칭도 부대 애칭이 붙는 ‘독수리마트’ ‘오뚜기마트’ 등으로 친근하게 변모했다. 문제는 그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 군에는 장병 복지에 대한 의지가 많이 부족해 보인다는 점이다. 지난 10월 피엑스에 대한 국정감사 내용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물품 가격과 품질 문제였다. 현재 국군복지단이 육·공군에서 직영하는 각 부대의 마트는 1981개점이다. 해군은 2006년부터 외부 업체와 5년 단위로 해군마트를 위탁운영하는데 지에스(GS)리테일과 2010년 7월1일부터 2015년 6월30일까지 위탁운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해군이 위탁운영하는 해군마트와 국군복지단이 직접 운영하는 육·공군 마트를 비교했을 때 민간위탁 운영 중인 해군마트 242곳의 가격이 장병 선호품 기준으로 30~50%까지 비싸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육·공군 마트도 시중보다 모든 것이 싸지는 않았다. 장병들에게 인기가 높은 냉동식품 중 ㅅ사의 닭강정은 같은 회사의 인터넷 쇼핑몰보다 비쌌으며, 인기 음료 밀키스의 경우 옥션에서 판매되는 가격에서 2원 정도만 저렴했다. 해군마트의 민간위탁은 인력 및 인건비 절감 차원에서 추진되었다. 하지만 총 242개 점포 중 207곳은 민간 판매원이 아닌 부대가 운영하는 부대 위탁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어 인력 및 인건비 절약이라는 취지가 무색했다. 국방부는 2013년 5월 국방경영 효율화 추진계획을 통해 육해공군 마트를 민간이 운영하는 방식으로 전환을 시도했다. 인력 및 인건비 절감이 이유였다. 이윤 창출을 위해 값을 높이게 되면 결국 월 10만원의 박봉을 받는 병사들에게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무리하게 추진한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해군마트의 민간위탁은 과연 실질적인 인력과 인건비 절감에 기여했을까. 장병들의 복지 증진이라는 과제도 충족했을까. 계약서를 보면, 민간 위탁업자는 해군에 매년 40억원의 수수료를 지급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지에스리테일은 매년 지급하는 40억원의 수수료 이외에도, 해군 쪽이 제공한 시설과 집기 이외의 추가적인 시설 투자까지 부담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제15조). 지에스리테일 쪽은 43억원가량의 시설 투자를 했다. 수수료와 시설 투자라는 비용 부담이 계약 내용에 반하는 고가 판매의 원인이 된 것일까. 실제 서울 영등포 이마트 가격의 90% 이하, 지에스25 편의점 가격의 80% 이하라는 계약 내용은 지켜지지 않았다. 가격 점검 권한을 가진 해군 쪽의 관리 태만도 큰 문제였다. 위탁운영 계약서에는 물가조사에 대한 용역의 비용 부담 또한 위탁운영 업체가 부담한다는 조항(제11조)이 있음에도 해군은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 실제로 물가조사 실시 현황과 위약금 부과 현황에 대한 보고서를 보면 총 3차례의 물가조사에서 1차의 경우 2190개 품목 중 1256개 품목이 시중 가격(이마트 영등포점 기준)과 동일하였고 138개 품목이 시중 가격보다 비쌌다. 하지만 2차와 3차 조사에서는 각각 379개 품목과 348개 품목이 오히려 시중보다 비싸다는 보고가 나왔다. 해군 쪽이 관리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음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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