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원 소설 <2화>
카페 ‘제임스’의 사장은 화교다. 본토가 아닌 대만인인데, 이름은 희원이다. 아홉 남매 중에 다섯째라고 했는데, 번식력이 뛰어난 부모임에 틀림없다. 1962년, 박정희는 통화개혁을 단행했고 그로 인해 희원의 부모는 전 재산을 날렸다. 그때부터 시작된 화교에 대한 탄압은 1976년에 이르러 극에 달했다. 화교들은 교육권과 재산권을 박탈당했다. 희원의 부모는 동남아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희원이 함께 떠나지 않은 이유는 더 이상 받아야 할 교육도 없고, 더 이상 지킬 재산도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그가 떠나지 않은 이유는 신중현이나 한대수, 그리고 김민기의 음악 때문일 것이고―그는 언젠가 이런 말도 했다. 1970년대 한국에 있는 것이 아니라 리버풀 따위에서 태어났더라면 그들은 전 세계에서 음악의 신으로 추앙받았을 것이야, 라고―거기에 한 명을 더 보태자면 제임스 때문일 것이다. 일본계 미군이자 그의 동성애 파트너인 제임스. 엄지로 베이스 기타의 첫 줄을 뜯어대는 섬 슬랩(thumb slap)과 검지로 줄을 뜯어 연주하는 플럭(Pluck) 주법을 내게 처음으로 가르쳐준 사람.
카페 이름이 ‘제임스’인 이유는 희원이 미군 제임스로부터 모든 물자들을 공급받기 때문이다. 최신 포크 음악을 구하는 것도, 히피 문화의 흐름을 전해 듣는 것도, 희귀 음반을 구하는 것도 모두 제임스 덕분이다. 제임스는 외조모가 일본인인 미국인이었다. 제임스가 오키나와 기지로 전근한다면 희원도 함께 한국을 떠날 테지만 장기근무 중인 제임스는 그럴 리 없다. 제임스가 한국에 장기근무를 신청한 것은 베트남으로 가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러니까 맥아더 기념 공원처럼 카페 ‘제임스’는 희원에게 일종의 헌정기념관인 셈이다.
- 베트남전 따위, 엿이나 먹으라지.
베트남전 이야기만 나오면 제임스는 흥분했다. 제임스는 한국으로 오기 전에 전사통지서를 나눠주는 일을 했다. 애리조나였다. 애리조나에선 햇빛이 느린 파도 같다고 했다.
- 햇빛 하난 끝내주지.
강렬한 햇빛에 조금만 서 있어도 탈색된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 사막은 소리도 없이 출렁이고 말이야.
제임스가 애리조나의 한낮의 더위를 견디며 전사통지서를 전달하기 위해 매케인 씨 집에 갔을 때였다. 당시엔 군인이 현관문에 노크를 하는 순간 모두 절망의 얼굴로 맞이했다고 한다. 매케인 씨도 마찬가지였다. 몸과 말은 떨리고 있었지만 생각만은 흔들리지 않게 움켜쥐려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 이보게, 자네 이름이 뭐라고 했나.
- 네, 제임스입니다.
- 그래, 제임스. 레모네이드라도 한잔할 텐가?
- 아니요. 괜찮습니다.
아들을 잃은 매케인은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을 맞으며 애써 창밖을 보려고 했다.
- 나 또한 2차 대전에 참전했었지. 유럽이었어. 내가 제일 그리웠던 게 뭔지 아나?
제임스는 차라리 레모네이드를 한잔 마시겠다고 말할 걸 하고 후회하고 있었다. 입안이 너무도 말라 마른침조차 삼킬 수 없어서였다.
- 젊었을 때 제일 싫었던 게 애리조나의 뜨거운 햇빛이었어. 난 늘 벗어나고 싶었지. 목장의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났다네. 오토바이를 타고 목장에 있는 말뚝을 모조리 박살 내고 싶었어. 죽을 때까지 소똥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거든.
매케인은 잠시 말을 멈추고는 거실에 붙어 있는 사진을 보았다.
- 아내가 살아 있었다면…… 아주 차가운 레모네이드를 대접했을 텐데. 그녀는 치킨 요리를 근사하게 만들곤 했지.
매케인은 사진 속의 여자를 가리켰다.
- 미인이시군요.
제임스가 말하자 매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 자네는 동양인 혼혈이군, 그렇지?
- 네.
- 언젠가 아들이 아시아에 대해 말하던 게 기억나는군. 부처…… 또 뭐가 있더라.
제임스는 일어나야만 했다. 제임스의 손에는 아직 전하지 못한 열아홉 장의 통지서가 더 있었다.
- 딸아이는 결혼을 해 시애틀에서 아주 잘 살고 있어. 시애틀에 가보고 싶지만 너무 먼 곳이야. 유럽까지 다녀왔는데도 말이야.
제임스가 매케인과 눈을 마주치기 싫어하는 것만큼이나 매케인은 횡설수설했다. 제임스가 인사를 하고 일어나려 하자 매케인은 악수를 청하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 부대원을 잃고 융프라우 어딘가에서 헤맸었지. 추위도 배고픔도 두렵지 않았어.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없었다네. 가장 두려웠던 것은 나 혼자 있다는 외로움이었어. 음…… 그래, 외로움.
시간은 애리조나의 태양만큼이나 느리게 흘렀다. 제임스는 갈증과 더위에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그는 서둘러 일어났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여 경의를 표했다.
- 잘 가게, 동양인 친구. 이렇게 더운 한여름 낮에는 애리조나를 돌아다니지 말게.
돌아다니지 말라니, 서류 가방 안에는 열아홉 장의 전사통지서가 남아 있는데. 제임스는 물끄러미 바닥만 보았다. 매케인이 눈치를 챘는지 일어나며 제임스를 배웅해주었다.
제임스는 군용차량에 타기 전에 흔들의자에 앉아 노을을 응시하는 매케인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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