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3.08.30 10:05 수정 : 2013.09.03 10:05

박성원 소설 <5화>



오늘의 대-한 뉴-우-스. 제1105호. 박정희 대통령은 제7회 한국전자전람회에 박근혜 양과 함께 182개 업체 출품 전자제품 전시장을 시찰하셨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금전등록기에 관심을 표출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나라는 1인 독재로 민주주의와 삼권분립제도가 말살됐다. 이에 우리는 민주구국선언을 통해…….

민은 30분짜리 녹음테이프에 대한뉴스와 재야인사들의 선언문 등을 믹싱해서 공연 중간에 켰다. 공연 도중에 불쾌한 표정으로 자리를 떠나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다.

- 절이 더러워서 싫으면 중이 떠나야죠. 그래서 제가 공연 시작하면서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우리는 더러운 일을 하는 좋은 사람들입니다, 라고. 자, 노래 한 곡 나갑니다. 드럼.

J가 어느새 베이스 기타를 맡았고 간단한 드럼은 제임스가 해주었다. 팬도 당연히 생겼다. 그중에 거의 매일 찾아오는 여대생이 있었는데 그 여대생은 민과 같은 대학에 다닌다고 했다. 그래서 민의 공연이 끝난 뒤 내가 소개를 시켜주었다.

- 무슨 과를 다니다가 휴학하셨어요?

- 법…… 대…….

- 어머, 저도 그런데. 몇 학번이에요?

- 잘 모를 거예요. 한 한기도 다니지 않고 휴학을 해서.

민은 음악과 정치 외에 학교나 가족 이야기는 잘 하지 않았다.

공연이 끝나면 민은 사람들과 어울려 정치 이야기를 하며 함께 술을 마셨다. 통행금지 시간이 되면 우리는 문을 걸어 잠그고 밤새 술을 마셨다.

- 민주주의의 반대말이 뭔지 알아?

민이 내게 물었다.

- 글쎄요, 공산주의?

- 바보.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의 반대말이지. 이 세상에 반대말이 없는 유일한 말이 바로 민주주의야. 미국도 민주주의, 중국도 민주주의, 박정희도 민주주의, 김일성도 민주주의.

- 그렇군요. 그러니까, 그 말은 중심이라는 말과 같다는 거네요.

- 중심? 그건 또 무슨 말이야?

- 됐어요. 우리 술이나 마셔요.

J가 말했다.

통행금지가 풀리면 제임스는 부대로, 희원은 집으로, 그리고 민과 J는 작업을 핑계로 빠져나갔고 나는 의자를 붙이고 잠을 잤다. 그들이 빠져나간 지하는 어둠 그 자체였다. 늘 피곤했지만 어쩐 일인지 잠은 잘 오지 않았다. 아버지나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려 했지만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나를 키운 부산의 할아버지 얼굴만 떠올랐다. 외롭다는 생각을 가끔 했지만 무엇 때문에 외로운지 알 수 없었다.

흥겨우면서도 약간은 우울한. 기분 좋으면서도 조금은 불안한 그런 몇 개월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만큼 내 생애에서 행복한 시절은 없었던 것 같다. J가 웃고 있고 노래를 들을 수 있으며 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이.

- 미래는 괜찮겠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우리의 노래를 들으며 몰랐던 진실을 하나씩 알아가고 있으니까 말이야. 내일은 보다 좋아질 거야.

J가 말했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감자 근사한 가을 하늘이 보였다.




한겨레출판 문학웹진한판 바로가기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박성원의 <우리가 지금은 헤어져도>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