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3.09.05 09:42 수정 : 2013.09.11 10:36

박성원 소설 <9화>



1977년, 이정선, 이주호, 김영미, 한영애가 참여한 해바라기 1집이 발표되었다. 그해 나는 카페 ‘제임스’ 밖으로 잘 나가지 않았다. 명동이나 남대문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또 어떤 냄새가 날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대신 <지금은 헤어져도>를 자주 들었다. 내 몸은 사막처럼 뜨거웠다가 설산의 한파처럼 순식간에 추위를 느끼기도 했다. 지독한 외로움이 달라붙었지만 만질 수도 끄집어낼 수도 없었다. 카페 ‘제임스’는 유럽의 어느 설산이 되었다가 순식간에 애리조나의 뜨거운 사막으로 변하기도 했다. 사막은 소리도 없이 출렁이고 말이야. 어디선가 제임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손님은 예전처럼 한두 테이블만 찰 정도였다. 희원과 제임스의 면회는 끝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감옥에 있을 거라는 추측만 할 뿐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재판이 있었다는 사실도 한참 뒤에 들었다. 그해와 그다음 해, 그리고 다음다음 해까지 J를 기다렸지만 J는 나타나지 않았다.

영어를 혼자 공부했다. 덕분에 아주 조금 늘었다. 미국으로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유학생 중 한 명이 시애틀에서 나의 출생증명서를 확인해주었다고 했다. 그러나 돌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미국에 있는 친척이 나를 초청해야 하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초청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아마 미국에 있는 친척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금발에 파란 눈인 나는 난민일 뿐이니까.

그리움은 사람을 왜소하게 만든다. 외로움은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익숙했다. 1980년에 대대적인 정비 사업으로 카페 ‘제임스’는 국가에 귀속되었고, 나는 남대문시장에서 일을 구해 진짜 미국인을 상대로 삐끼를 했다.

- Where are you from?

그들이 물으면 나는 시애틀이라고 말했다. 일을 마치고 혼자 방 안에 있으면 아주 가끔씩 꿈에서 J와 희원과 제임스를 만나곤 했다. 모든 꿈이 그런 것처럼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그런 꿈이었다. 꿈에서 깨면 J를 떠올리며 기계적으로 자위를 했다. 손바닥을 적신 정액은 눈물보다도 흐렸다.

가끔 일 때문에 명동과 대학로를 걸으며 건물이나 가게가 많이 바뀌었음을 알았지만 냄새는 여전했다. 공기는 여전히 희미했고, 대를 이은 비둘기들만이 어기적거리며 걸어 다녔다. 남산이 보였지만 나는 애써 남산을 보지 않으려 했다.




한겨레출판 문학웹진한판 바로가기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박성원의 <우리가 지금은 헤어져도>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