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원 소설 <10화>
그러고는 어떻게 살았을까. 제임스가 전사통지서를 모두 돌리고 나서 끝없이 들었던 포크 음악이 사라진 것처럼, 머리 위에 있던 한낮의 태양이 그냥 지평선 밖으로 사라진 것 같은데 벌써 오십이다. 느린 파도 위를 잠시 떠다닌 것 같은데.
지금 나는 공항이다. 공항에서 J에게 남기는 편지를 쓰고 있다. 오십이 넘어 고향을 보게 되었다고. 지금 내 손엔 작은 항아리가 있다. 그리고 그 안엔 제임스의 유골이 담겨 있다. 한 달 전쯤 미군을 통해 한 한국인이 나에게 와서 제임스의 유골을 전해주었다. 나에게 유골을 전해준 젊은이는 전사통지서를 돌리던 제임스를 떠올리게 했다. 나는 그 젊은이에게 예전에 찍은 제임스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 누구지요?
- 당신이 전해준 항아리에 든 사람입니다.
- 잘생겼군요. 한국인이었나요?
- 아니요. 이야기하자면 길어요. 언젠가 제임스가 미국에 대해 말한 것들이 기억나요. 애리조나의 느린 파도 같은 햇빛.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 글쎄요.
젊은이는 어깨를 으쓱였다.
- 혹시 포크를 좋아하나요?
내가 묻자 그는 채식주의자라고 말했다. 젊은이가 꺼낸 여러 종이에 서명을 하자 그는 비행기 표와 천 달러 남짓의 수표를 전해주었다.
- 제임스는 언젠가 나에게 미국으로 보내준다고 한 적이 있었지요. 유언으로 약속을 지켰군요.
용무를 다 본 젊은이는 유골함을 정중하게 내려놓고 인사를 했다. 나는 젊은이가 차를 타고 떠난 길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멀리 노을이 지면서 햇살이 따가웠다.
공항에서 편지봉투와 편지지를 샀다. 남대문이 그려져 있는 편지지였다. 희원이 어디선가 식당을 한다고 들었지만 확인할 길은 없다는 말을 끝으로 편지를 마무리했다. 봉투엔 아주 예전에 민이 적어준 주소를 썼고, J 이름을 썼다. 물론 편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안다. 그러나 나는 여러 장의 우표를 사서 붙였다.
나는 J의 말을 믿는다. 내일은 어리석은 과거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고, 우리가 나아간 만큼 미래는 밝을 거라는 말을.
비행기에서 바라보면 거대한 산도 아주 작게 보일 것이다. 어쩌면 매케인이 헤매던 유럽의 어느 설산을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제임스가 가려 했던 일본을 지나갈 수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희원의 형제가 있는 동남아를 거쳐서 갈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왔던 길을 그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을 것이고, 제임스가 전사통지서를 돌리던 애리조나의 뜨거운 사막 위를 지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어딘가에는 J도 있을 것이다. 비록 지금은 헤어져도.
그때 그 많던 노래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이상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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