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 소설 <3화>
6.
“헤밍웨이 씨는 잘 있던가?”
남편이 묻는다.
“낚시를 갔는지 보이지 않았어. 고양이만 지겹도록 봤다고.”
그는 멍하게 나를 바라본다. 얼굴이 벌겋다. 맥주가 석 잔째다. 열두 개의 굴도 두 접시째다. 나는 두세 개밖에 먹지 않았다.
그는 다시 휴대폰으로 시선을 돌린다. 저녁 식사 내내 저놈의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미국에 도착해서 맨 처음 찾아간 곳도 휴대폰 대리점이다. 심 카드를 바꿔 끼우면 데이터를 쓸 수 있다나. 그래야 지도도 볼 수 있고 맛집과 숙소 예약도 편리하단다.
나는 책으로 휴대폰을 덮었다.
“뭐야?”
남편의 목소리에 짜증이 배어 있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영어로 된 거잖아?”
“헤밍웨이 박물관에서 샀어. 이 정도는 중학생 영어 수준으로 읽을 수 있다고.”
“그건 당신 말이고.”
남편은 책을 휘리릭 넘겨본다. 웨이트리스가 테이블에 다가오자 빈 잔을 든다. 그리고 다시 휴대폰으로.
나는 휴대폰을 빼앗아 던져버리는 상상을 한다. 땅바닥에 던져서 신발로 짓이겨버려야지. 배터리는 튀어나가고 액정이 거미줄처럼 부서진다. 그의 얼굴도 일그러지겠지. 남편을 식당에 홀로 남겨둔 채 자동차에 올라탄 뒤, 뒤돌아보지 않고 출발. 전속력으로 달려 그를 떠날 것이다. 미국의 최남단, 하이웨이 1번이 시작되는 곳. 새 출발을 하기에 좋은 곳이다.
그러나 현실은, 새 맥주가 도착했을 뿐이다.
7.
남편이 직장을 그만둔 지 한 해가 다 되어간다. 아무 상의도 없이, 그 어떤 전조도 없이 출근을 하지 않았다. 결혼하고 5년 동안 성실하게 회사에 다녔다. 연봉도 높고 사원 복지 시설도 좋았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지만 수당도 꼬박꼬박 나왔다. 덕택에 자동차도 큰 것으로 바꿨고 아파트 평수도 넓혔다. 덤으로 최신형 휴대폰까지 생겼다.
나는 전업주부로 일하는 게 좋았다. 남편이 출근하고 난 뒤에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았다. 가끔씩 선배의 부탁으로 번역 아르바이트를 했다. 문학 작품과는 거리가 먼 딱딱한 문서일 뿐이었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일거리는 끊이지 않았다. 남편이 출근하면 스포츠 센터에서 수영을 하고, 점심을 대충 때운 뒤에 번역을 하거나 책을 읽다 보면 하루가 다 지나갔다. 가끔씩 약속 때문에 시내로 나가기도 했지만 사람이 많은 것이 싫어서 주로 집과 스포츠 센터, 그리고 도서관을 오갔다. 평온한 삶이었다. 남편이 직장을 그만둬서 화가 난 표면적인 이유는 나와 상의 없이 결정했다는 것이지만, 사실은 평온한 일상에 그가 갑자기 끼어들어서다. 그는 오전 11시쯤에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 그리고 서재에 처박혀 저녁때까지 나오지 않는다.
직장을 그만둔 며칠 동안은 정성스레 끼니를 챙겨줬다. 잡채도 만들고, 고기도 굽고, 생전 처음으로 김치도 담갔다. 맛있는 것을 많이 먹고 푹 쉬면 다시 회사에 나가겠지. 어쩌면 다른 직장을 미리 구해놓고 편안하게 쉬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 내 예상은 빗나갔다. 그는 조용히 서재에 처박혀 있지만 나는 서재 앞을 서성거릴 때가 많다. 회사를 그만둔 이유를 물어보면 언제나 똑같은 답이 돌아온다.
“쉬고 싶어서.”
언제까지 쉴 거냐고 물어봐도 똑같은 대답이다.
“지루해질 때까지.”
진짜인지 거짓말인지 알 수 없다. 다음엔 뭘 할 건지 물어보면, 아무 대답이 없다.
8.
숙소는 남편이 예약했다. 가격도 싸고 위치도 시내 한가운데라 이곳을 골랐다고 한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자그마한 호텔이다. 호텔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의 모텔보다 나은 게 없다. 방도 좁고 퀴퀴한 에어컨 냄새가 난다. 매트리스는 딱딱하고 창문은 좁다. 창밖은 옆 건물의 네온사인 때문에 울긋불긋하다. 호텔 이름도 청승맞다. 하트브레이크 호텔이라니. 누군가의 심장이 부숴지길 원했다면 나름 성공한 것 같다.
조금 전에 샤워를 했지만 몸이 끈적끈적하다. 땀도 아니고 습기도 아닌 기분 나쁜 무언가가 몸에 붙어 있는 것 같다. 남편은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간간이 코를 곤다. 등을 쿡, 찔러본다. 끄응 하는 낮은 신음이 들린다. 언제 마지막으로 남편과 몸을 섞었는지 기억조차 감감하다. 직장에 다닐 때는 바빠서 피곤하다는 이유였고, 그만둔 다음부터는 내가 꺼려졌다. 같은 침대에 누워 있어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게 조금, 무서웠던 것이다.
파산할 지경은 아니지만 통장 잔고는 줄어들고 있다. 아파트 대출금도 갚아야 하고 자동차 할부도 꼬박꼬박 통장에서 빠져 나간다. 월급이 들어올 때엔 느끼지 못했지만 더 이상 들어오는 돈이 없으니 눈에 띄게 표시가 났다. 지능적인 사기꾼들이 돈을 몰래 빼돌리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적금 통장이 하나 있지만 그건 비상용이다. 혹시, 우리에게 아이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아이를 바라지 않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남편이다. 요즘 그 생각이 바뀌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남편을 등 뒤에서 안아본다. 어색하다. 그의 등과 나의 가슴 사이에 주먹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공간이 있다. 에어컨이 갑자기 멈춘다. 남편의 숨 쉬는 소리가 들린다. 목에 가래라도 걸려 있는 모양이다. 남편의 가슴을 만져본다. 약한 심장 박동이 느껴진다. 배를 만져본다. 부쩍 뱃살이 늘어났다. 손을 더 아래로 움직이려다 원위치로 돌렸다. 잠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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