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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9.17 10:00 수정 : 2013.09.24 10:17

서진 소설 <7화>



15.

지난 새벽, 나는 헤밍웨이의 집에 들어갔다. 불은 모두 꺼져 있었지만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낮에도 들렀던 거실 입구에는 사진 액자도, 유리로 된 전시물 케이스도 없었다. 입장료를 파는 곳이나 전시장을 알리는 표시도 없었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진짜 집처럼 느껴졌다. 나는 침실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은근히 바라고 있었다. 그가 진짜 헤밍웨이니까 자기 집으로 온 것뿐이라고.

침실로 들어가니, 야아아옹 하고 고양이 한 마리가 살금살금 기어왔다.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쳐놓았던 줄은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걸음 소리가 나지 않게 침대로 다가갔다. 침대에는 그가 얼굴을 똑바로 천장으로 향하고 두 손은 가슴팍에 얹은 채로 누워 있었다. 마치 관 속에 누워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가슴이 조금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가는 것을 보니 살아 있는 건 확실했다. 관광객을 위한 전시용 헤밍웨이가 아니다.

나는 신발을 벗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몸을 꿈틀거리며 내가 누울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에어컨은 없었다. 창문을 열어놓았는지 서늘한 바람이 불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나는 그의 등에 손을 대보았다. 늙어서 가죽이 말라버린 코끼리의 등 같았다.

“요즘 잠이 들기 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오?”

목소리가 갈라져서 쇳소리가 중간중간 섞여 있었다. 내게 말하는 건지, 중얼거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아침이 되면 눈이 떠지지 않기를 바란다오.”

나는 그의 어깨를 살짝 붙잡았다.

“모든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다 보면 죽음으로 끝나오. 그걸 숨기는 자는 진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 것이지.”*

그가 몇 살 때 엽총으로 자신의 입을 겨눴는지 생각해보았다. 60살 아니면 61살이었을 것이다. 우울증과 알코올중독으로 정신병원을 드나들었고, 전기치료로 인해 몸과 마음이 황폐해진 뒤였다.

어깨에 올라간 나의 손 위에 헤밍웨이의 손이 툭, 하고 얹혀졌다. 손의 감촉은 딱딱하지만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한동안 그렇게 그는 내 손을 잡고 있었다.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전달하려고 애쓰는 손이 아니었다. 마치 잠이 들기 위해서 부축이 필요한 손 같았다. 그의 손은 예고도 없이 스르르 내려갔다. 바보 같은 생각이지만, 혹시 그가 죽지 않았을까 걱정되었다. 가슴을 만져보았다. 털이 수북했다. 미약하게나마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손을 조금 더 아래로 움직였다. 완만한 언덕처럼 솟아오른 배가 느껴졌다. 배탈이 난 아이를 치료하는 것처럼 원을 그리며 쓰다듬었다. 그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몸을 꿈틀거렸다. 손을 움직여 더 아래로 뻗었지만 닿는 게 없었다. 나의 몸이 아래로, 끝이 없는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기분이 들 뿐이었다.

16.

운전대의 손을 바라본다. 햇볕 때문에 따끔거린다. 오른쪽 운전대에서 손을 뗀 다음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한다.

“손이 저려?”

남편이 묻는다. 나는 헤밍웨이의 손을 생각하고 있었다. 내 손을 쥐었던 그 손의 감촉을 떠올려보려고 애썼다. 그럴수록 느낌은 저만치 사라졌다.

“아니, 그냥. 그나저나…….”

남편의 얼굴이 밝아진다. 내가 화를 풀었다는 걸 알아챘나 보다.

“글을 쓰고 있다고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던 거야?”

“나는 합평 시간이 제일 싫었거든.”

그가 말한다.

“합평 시간에 소설을 발표한 적도 없잖아?”

“쓴 적이 없는 건 아냐. 다들 돌려가면서 한마디씩 내뱉는 말들이 우스웠거든. 연습생들이 어떻게 연습생을 평가하지?”

“그 말은 내가…… 작가가 아니라서 보여줄 수 없었다는 거야?”

신호등이 빨갛게 변했다. 남편은 내가 왜 화가 났는지 그제야 알아차린 것 같았다.

“아냐, 그런 게 아니라고. 온전히 나다운 글을 써보고 싶었을 뿐이야. 다음 소설은 꼭 보여줄게. 첫 시작은 혼자 하고 싶었어.”

더 이상 남편에게 묻지 않았다. 소설의 제목이 뭔지, 내용은 뭔지, 혹시 나를 모델로 한 사람이 나오는지, 궁금한 게 많지만 책으로 확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에 대해 몰랐던 몇 가지 것들을 더 발견할지도 모른다. 이상하다. 합평 시간에 선배와 동료들한테 가장 칭찬을 많이 들었던 사람은 바로 나인데 동아리방 구석에서 만화책을 읽던 남편이 장편소설을 쓰다니. 누구는 심호흡을 백 번 해도 다이빙을 할 용기가 나지 않는데 누구는 망망대해를 향해 그대로 점프해버린 것이다.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었다. 창밖을 보니 고속도로 1번이 시작되는 제로 마일 표지판이 보인다. 여기가 세상의 출발점이라는 듯이 초록색 바탕에 흰색으로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다.

“출발 안 해?”

남편이 말한다. 뒤에 있는 트럭이 신경질적으로 계속 경적을 울려댄다. 그런데도 브레이크에서 발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오후의 죽음》




(이상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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