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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0.07 09:57 수정 : 2014.01.15 15:18

주원규 소설 <연애의 실질> ⓒ전지은

주원규 소설 <1화>



1

여사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몸을 보며 잠에서 깨어났다. 진분홍빛 실크 란제리 차림의 여사는 중년의 나이치고는 마른 편이었다. 마른 몸이긴 해도 썩 아름다운 몸매는 아니었다. 아름답지 않다는 건 순전히 여사 자신의 겸손에서 비롯된 생각이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을 마주할 때마다 여사는 늘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자기 몸이 아름답지 못하다는 생각이 여사에겐 마냥 우울한 일은 아니었다. 그이는 이런 나의 몸을 항상 아끼고 사랑해주니까 걱정할 게 없다는 나름의 강한 소신이 여사를 위로해주었다. 그건 일종의 믿음이었다. 항상 변함없는 태도로 자신을 대하는 그이에 대한 믿음. 여사는 그 믿음을 한가득 마음에 품은 뒤에야 기지개를 켜며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때맞춰 괘종시계에서 오전 7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2

그이는 식사 중에 말하기를 즐기지 않았다. 식탁 옆에 몇 종의 조간신문을 놓아두긴 해도 그것을 펼쳐보진 않았다. 그이는 출근을 앞둔 다른 남편들처럼 제멋대로 적어 넣은 신문 기사를 믿는 편이 못 되었다. 그래서일까. 그이에게 신문은 재떨이와 다를 바 없는 소품이었다.

그이가 삼십여 분에 걸쳐 조반을 먹고 양복으로 갈아입는 동안 여사는 수족처럼 그이를 따라붙었다. 물론 그이를 지키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아침 출근만큼은 여사의 몫이었다. 빳빳하게 다린 와이셔츠를 손수 입히고 어깨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는 일, 현관으로 나서는 그이의 윤기 나는 구두를 신기 편하도록 놓아주는 일 등은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여사만의 기쁨이었다.

오늘 여사는 그이를 대문이 아닌 현관 앞에서 배웅하기로 했다. 그이는 여사의 기대보다 훨씬 더 가정적이며 매사 관대한 편이었다. 오늘은 여러 가지 준비로 머릿속이 피곤할 테니 배웅 따윈 현관에서 약식으로 끝내라는 게 그이의 생각이었다.

그이는 그렇게 여사와 네 자녀의 배웅을 받으며 현관을 나섰다. 하지만 여사는 그이의 배려를 마음으로만 받았다. 여사는 그이를 따라 운전기사가 대기 중인 대문 앞까지 나섰다. 여사는 그이가 운전기사가 열어놓은 관용차 뒷좌석에 탑승할 때까지 지켜보았다. 그이는 여사를 감사의 마음을 담은 눈길로 쳐다봤다. 여사는 그이가 사랑스럽다는 상투적인 말로 자신의 진심 표현을 충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그이의 눈빛엔 여사에 대한 감사와 존경이 잔뜩 묻어 있었다. 그이의 눈빛 세례를 받은 여사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그렇게 여사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주원규(소설가)




주원규

197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제14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주요 작품으로 《열외인종 잔혹사》, 《망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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