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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0.08 09:42 수정 : 2013.10.18 10:11

주원규 소설 <2화>



3

여사는 집 안 청소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었다. 손수 자기 손으로 해내는 것을 즐기는 것. 그것이 여사만의 철학이었다. 가끔 여사의 이런 바지런함이 두 명의 식모(가사도우미의 1980년대식 표현―저자 주)와 세 명의 주방 아줌마, 두 명의 정원 관리사, 그리고 열 명의 경호 사병들을 불안하게 했다. 자신들의 게으름, 나태, 근무 태만을 에둘러 질타하기 위해 여사가 몸소 나서 가정 청결 엄수에 힘쓰는 게 아닌지 그들은 염려했다.

그들은 여사의 집 안 청소를 그런 식으로 해석했지만 여사는 그들에게 불안감을 심어줄 의도는 없었다. 단지 여사는 그이가 특별하게 생각하는 날에 자신이 직접 그 특별함에 일조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것임을 자신과 그이를 제 목숨처럼 수발드는 모든 이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여사의 청소 과정은 대단히 섬세했고 학문적으로 표현해 극사실적이었다. 여사는 거실 테이블 유리 위에 내려앉은 한 올의 먼지도 견딜 수 없어 했으며, 카펫 위에 흐르듯 뒹구는 미세먼지 제거를 위해 온 힘을 쏟아부었다. 여사의 이런 전투적인 청소에 처음엔 안절부절못하고 우왕좌왕하던 두 명의 식모도 점차 여사의 청소 철학을 이해하곤 빠르게 청결 작업에 동참했다. 모두 여자로만 꾸려진 식모들은 이따금 헛기침만 할 뿐, 청소하는 반나절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사의 악다문 입술이 좀처럼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은 늦봄인 5월 날씨에도 어찌나 바지런히 몸을 놀렸는지 여사의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알알이 맺혀 들었다. 여사는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칠 생각조차 잊은 채 거실과 주방 청소에 매진했다. 오늘 그이를 만나러 올 특별한 손님의 동선이 고작해야 식사 장소와 거실, 그리고 현관이 전부일 거란 예상에 특별히 그 장소에 더욱 신경을 기울였다. 여사는 집 역시 그이의 얼굴로 생각해왔으며 그이는 여사의 모든 것이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소명감만으로 청소 작업에 임했다. 그러다 보니 정말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였다. 여사가 현관 바닥 타일 사이사이에 묻은 녹을 지워냈을 때 시간은 이미 정오를 훌쩍 넘어서 있었다.

4

계핏가루와 찹쌀 등의 재료가 주방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였다. 여사는 요리 사병에게 준비해놓으라고 지시했던 재료들을 꼼꼼히 확인했다. 재료 중 하나라도 부족하거나 여사가 원하는 것과 다른 종류를 준비할 경우 받게 될 문책의 엄중함을 익히 알고 있어서일까. 요리 사병이 공수해온 식재료들은 그 양이 지시했던 것보다 훨씬 넘친다는 점만 제외하곤 여사를 썩 만족스럽게 했다.

여사는 아무래도 오늘 하루가 다른 어떤 날들보다 더 유쾌하고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지금까지 여사의 예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그이의 바깥일에 있어서도 여사의 예감은 거의 적중하곤 했다. 그런데 현관 밖에서 클랙슨 소리가 들리고 이어지는 벨 소리. 곧이어 대문과 현관문이 차례대로 열리고 집 안으로 들어온 한 인간의 상판대기를 마주한 여사는 혹 자신의 예감이 길조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여사는 머릿속에 떠오른 흉흉한 생각을 떨쳐내기로 작심했다.

‘나쁜 생각은 무엇이든 빨리 잊는 게 좋아.’ 그게 여사가 지금까지 삶을 꾸려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온 인생철학 중 하나였다.

손님 맞을 준비에 여념이 없던 여사에게 예고 없이 찾아온 불청객은 그이와 여사 둘 모두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셋째 아들이었다. 국민학교(초등학교의 1980년대식 표현 저자 주)에 재학 중인 셋째 아들은 오늘처럼 종종 학교를 무단 조퇴하고 집으로 들어오곤 했다. 그래서일까. 셋째 아들의 느닷없는 무단 조퇴에도 여사는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여사는 평소에도 크게 당황하거나 호들갑 떠는 모습을 좀처럼 보여주지 않았다. 간혹 군인정신을 강조해 세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에게 엄한 체벌을 가하는 그이와는 다르게 여사는 자녀들에게 큰소리 한번 내지 않는 초인적인 침착함을 보여주었다.

2층 자기 방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거실 소파에 주저앉은 셋째 아들은 자신의 옆에 앉은 여사에게 앞뒤 맞지 않는 조퇴 사유를 주문을 외듯 중얼거렸다. 여사는 무표정과 침묵으로 셋째 아들의 말을 경청했다. 그러던 중 거실 테이블에 놓여 있던 다이얼 전화기에서 요란한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벨 소리가 들리자 여사는 자신의 오른손 검지로 입을 가려 셋째 아들의 입을 얼어붙게 했다. 그러곤 두 번째 벨 소리가 시작되기 직전에 수화기를 들어 전화를 받았다. 그것은 전화벨이 두 번 이상 울리는 걸 죽도록 싫어하는, 조급증을 넘어 남자다운 과단성으로 평가받는 그이의 불같은 성향을 너무나 잘 아는 여사다운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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