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규 소설 <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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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를 갓 넘긴 시간에 집으로 전화를 한 이는 여사의 예상대로 그이였다. 그이는 산더미처럼 쌓였을 공무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하루에 한 번 집으로 전화하는 걸 잊지 않았다. 그이는 어쩌면 큰일을 도모하는 이에겐 지극히 사소한 것일지도 모를 가족사나 가사 일에 대한 염려, 당부의 말들을 흡사 웅변하듯 늘어놓은 다음 집안 간수와 네 자녀 근황을 묻는 것으로 마무리하곤 했다.
여사는 수화기를 든 채 손짓으로 셋째 아들에게 2층 자기 방으로 올라갈 것을 지시했다. 더 이상 변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한 셋째 아들이 홀가분한 표정이 되어 2층 계단을 힘차게 밟고 올라섰다. 여사는 그이에게 아무 일도 없으며 아이들 역시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고 답했다. 평소 같았으면 가족의 안부를 묻는 부부간 사담으로 마무리되었음 직한 통화지만 오늘의 통화에서 그이는 한 가지 추가 사항을 덧붙였다.
그이는 말했다. 오늘의 초대 손님 중 ‘서’가 먼저 집에 찾아갈 거라고. 여사가 ‘서’의 지아비가 될 ‘군’은 언제 오느냐고 그이에게 물었더니 그이는 ‘서’의 지아비가 될 ‘군’은 퇴근 시간에 맞춰 자신과 함께 들어갈 거라고 답하며 다음과 같은 당부의 말을 추가했다.
그이는 ‘서’가 먼저 집에 찾아오면 예비신부인 ‘서’에게 당신과 같은 현숙한 여편네로서의 기품을, 내친김에 아녀자의 미덕이 무엇인지 단단히 일러주라고 여사에게 말했다.
그이의 말을 잠자코 듣던 여사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자신을 향한 그이의 믿음이 여사의 온몸을 부르르 전율케 할 정도로 격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현숙한 여편네로 인정해준 그이의 배려에 화답하기 위해서라도 여사는 ‘서’에게 굳이 뭔가 가르쳐야 한다면 그건 바로 요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생각이 섬광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자 찹쌀떡을 빚기 위해 앞치마를 두른 주방 아줌마들에게 하던 일 당장 멈추라고 엄히 지시했다.
약간 의아해하는 주방 아줌마들의 표정이 읽혔지만 여사는 일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자신의 속내를 설명해주는 건 시간 낭비라고 판단했는지 침묵했다.
잠시 후, 현관 벨이 울렸다. 그이가 말한 ‘서’가 현관문을 열고 등장했다. 때맞춰 곱게 한복으로 갈아입은 여사에게 구십도 각도로 허리 숙여 인사한 ‘서’는 ‘안녕하세요. 사모님’이란 말을 약간 높은 톤의 음성으로 말했다. 여사는 미소를 머금은 채 그런 ‘서’를 맞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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