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규 소설 <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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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의 삶은 오직 국가에만 충성 봉사해야 한다고, 군인이 국가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며 때론 국가가 말도 안 되는 명을 내려도 그것이 국가의 지엄한 부름이라면 어떤 가치보다 우선해 명령 수행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그야말로 주옥같은 그이의 말(씀)을 방해하는 오직 단 하나의 장애물은 바로 셋째 아들이었다.
셋째 아들은 뭐가 그렇게 서러웠는지 무릎 꿇고 두 손 높이 들어 올리기 시작할 때부터 훌쩍훌쩍 울기 시작하더니 공교롭게도 그이의 군인관이 절정에 이르는 시점에 맞춰 부모 잃은 아이처럼 대성통곡하고 말았다.
식탁의 분위기가 셋째 아들의 통곡으로 자연 어수선해지고 엉망이 되어버렸는데, 그럼에도 그이는 초인적 인내심을 발휘해 셋째 아들을 향한 본격적인 체벌을 억누르고 또 억눌렀다. 그이가 그렇게 참아내는 이유는 단순하지만 분명했다. 어느 때부터인가. 자신의 말(씀)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마음속에 새겨 넣으려는 두 남녀, ‘군’과 ‘서’에게 자식 우는 거 하나 참지 못해 버럭 달려들어 두들겨 패는 소인배로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대개 이런 경우 제일 먼저 민첩하게 움직이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여사였다. 셋째 아들의 울음이 점점 더 커지자 여사가 한걸음에 셋째 아들에게 다가가 당장 울음을 그치라고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그렇게 말한 여사는 녀석을 일으켜 2층 방으로 데려가고자 했다. 하지만 녀석은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여사가 움직이지 않는 이유를 물으니 녀석은 아버지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자신은 이 천형의 체벌을 포기해선 안 된다는 걸 어울리지 않는 비장미를 가득 담아 말했다. 여사가 난처한 얼굴이 되어 그이가 앉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취기가 잔뜩 올라 얼굴 전체가 벌겋게 달아오른 그이는 자신의 군 복무 시절 무용담을 ‘서’에게 들려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서’ 역시 그이의 소위 복음 경청에 애쓰면서도 또 한편으론 난처해하는 여사의 눈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어색함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서였을까. ‘서’는 빠른 속도로 찹쌀떡을 입안에 밀어 넣었다. 오후 내내 빚은 찹쌀떡은 재료를 과다하게 준비한 요리 병사의 실수로 생각했던 것보다 그 양이 훨씬 더 많았다.
결국 여사가 셋째 아들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는 데 성공한 그때였다. 그토록 시끄럽던 셋째 아들의 울음소리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또한 한 번도 쉬지 않고 지껄이던 그이의 말(씀)도 중단되었다. ‘아. 그렇습니까. 장군님?’, ‘아. 듣고 보니 그렇군요. 장군님’을 연호하던 ‘군’의 추임새도 멈춰버렸다.
모든 소리가 소거되고 오직 단 하나의 망측한 소리만이 여사와 그이의 집 전체를 압도했다. 소리의 주인공이 모두를 당황스럽게 했다. 망측스러운 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서’였다.
11
‘서’의 입안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처음부터 망측스러운 건 아니었다. 그저 조용히,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고 헛기침 비슷하게 쿨럭이던 게 고작이었다. 여사는 그런 ‘서’의 소극적인 태도가 일을 크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찹쌀떡을 닥치는 대로 주워 먹고 제대로 씹기도 전에 그냥 막 삼켜 넣고서 그것도 모자라 새 찹쌀떡을 입안에 밀어 넣길 반복했으니 탈이 나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게다가 그이의 말(씀)에 빠짐없이 추임새를 넣어주다 보니 입안에 욱여넣은 찹쌀떡이 입에 걸리지 않는 게 이상한 거라고 여사는 확신했다. 어느 순간부터 ‘서’의 기침 소리가 비명으로 변해갔다. 그이의 말(씀)도 멈추게 할 만큼 끔찍했다. 처음엔 ‘컥컥’, ‘웩웩’하는 정도의 목이 메거나 사레가 들렸을 때 내는 소리로 시작했다가 종래에 가선 두 손으로 제 목을 움켜쥐고 남성인지 여성인지 성의 구분조차 불분명한 신음을, 그것도 신성하고 지엄한 그이와의 식사 자리에서 거침없이 쏟아냈다.
여사는 서둘러 ‘서’의 안색부터 챙겼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게 위급 상황이란 짐작이 섰다. 열변을 토하다 중도에 막힌 그이는 심기가 불편한 듯 식사를 끝내기 전엔 여간해선 마시지 않는 수정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군’은 ‘서’의 발작에 어떻게든 반응해야 했지만 최대한 품위를 잃지 않는 선에서 해결하려 애썼다. 여전히 그이가 앉은 식탁 중앙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군’은 ‘서’의 등을 가볍게 ‘툭툭’ 두드리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서’의 상태는 갈수록 악화되었고 급기야 ‘서’는 억지로 구토라도 해보려고 손가락을 목구멍 깊이 밀어 넣어 식탁 위 구첩반상 위에 지금까지 먹었던 음식물을 죄다 게워냈다. 그 순간 그이의 표정이 끔찍하게 일그러졌다. 못 볼 것을 본 표정이 분명했다. 그런 그이를 본 ‘군’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뭣 마려운 강아지마냥 쩔쩔맸다.
실컷 구토를 하고도 여전히 목에 걸린 찹쌀떡이 해결이 안 된 모양인지 급기야 ‘서’는 자리에서 일어섰고 제 목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짐승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군’ 역시 일어섰는데, ‘군’은 어디서 어설프게 보고 배웠는지 ‘서’의 가슴팍을 손바닥으로 세차게 두들겼지만 오히려 그녀의 몸에 덧없는 고통만 가중시킬 뿐이었다.
사태가 이쯤 되자 여사는 자신이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사는 그이의 부하 중 한 명을 불러 119에 신고할 것을 지시했다. 여사의 지시를 받은 부하가 119 신고를 위해 수화기를 집었을 때다. 바로 그때, 그이가 나섰다. 그이의 묵직한 한마디가 부하를 멈춰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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