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규 소설 <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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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이가 떠날 때 그이의 수족처럼 굴어대는 이들도 덩달아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그들 모두 오늘은 거국적으로 매우 중대한 날이란 말만 거듭했다. 그러니까 그 말의 숨은 뜻은 원래 장군님이 오늘 이렇게 한가하게 결혼 앞둔 예비부부에게 덕담이나 해주는 날이 아니었다는 의미로 읽히기에 충분했다.
그이가 바람처럼 떠나간 뒤 셋째 아들은 여사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알아서 2층 자기 방으로 올라가 문을 잠갔다. 세 명의 주방 도우미들은 식탁 위에 놓인 음식물을 빠른 속도로 치우기 시작했으며, 두 명의 식모 역시 물기 뺀 행주로 ‘서’가 뒹굴었던 자리에 흥건히 배인, 지금도 멈추지 않고 흐르는 피를 닦아내는 데 바빴다.
‘군’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대로 선 채 더 이상 소리 지르지도 않고 숨 쉬지도 않는 ‘서’의 등만 계속 두드렸다. ‘군’의 곁으로 여사가 조용히 다가갔다. 여사는 ‘서’의 등을 두드리던 ‘군’의 손을 꼭 붙잡아주었다. 그제야 동작을 멈춘 ‘군’이 멍한 표정으로 여사를 바라봤다. 여사의 따뜻한 손길이 몸 전체에 전달되자 뭉클했던지 ‘군’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여사는 더없이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이가 오늘 한 행동. 잘한 일이라고 말해줘요.”
여사의 말을 들은 ‘군’이 잠시 멈칫했다. ‘군’은 한동안 여사를 바라보다 끝내 머리를 식탁에 처박고 만 ‘서’를 내려다봤다. 그렇게 한두 번 여사와 ‘서’를 번갈아 바라보던 ‘군’이 끝내 입을 열었다. 떨리는 ‘군’의 음성이 여사의 귀에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군’은 답이 아닌 질문을 꺼냈다.
“그게 지금 왜 중요하죠?”
‘군’의 질문에 대한 여사의 답은 확고했다.
“잘했다고 믿는 게 중요하니까요.”
여전히 여사는 ‘군’을 자애로운 눈길로 바라보았지만 그녀의 눈빛 속엔 믿음을 강요하는 종용의 열의가 가득했다.
여사는 그이를 믿었고, ‘군’ 역시 그이를 믿었다. 그 믿음이 비록 자신에겐 현숙한 여편네로서의 믿음이며, ‘군’에겐 목숨까지 바칠 만큼 엄청난 상명하복 관계에서 싹튼 믿음이라 하더라도 여사는 본질은 같을 거라고 믿었다. 여사는 바로 그 믿음이 중요하다는 걸 앞으로 자신보다 인생을 좀 더 오래 살게 될 ‘군’에게 일러두고 싶었다. 쉬지 않고 검은 피를 쏟아내는 ‘서’를 앞에 두고 말이다.
1980년 5월 18일. 어느 사적인 기록
(이상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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